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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홍보마당
작성자 레나
작성일 2009/04/14
ㆍ조회: 1247  
가정미사 신앙체험

심희경 율리아나/쌍뚜스성가대

저는 신앙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시절에 잠시 다녔던 개신교 감리교회에서, 어렴풋이 하느님은 좋은 분이고 저를 사랑하신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계성여고에 들어가면서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명동성당에서 로고스합창단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활동하던 단원 중에는 세계적인 성악가가 된 조수미도 있었습니다. 청소년기와 청년기 동안 열정적으로 했던 그 로고스합창단 시절은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즐거움만을 선사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도 주는 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만나 명동성당에서 관면혼배를 했습니다. 개신교에서 세례 받은 적이 있는 남편은 굳이 천주교 신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당에 갈 때마다 운전기사 노릇만 충실히 해주고 미사에는 참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천주교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겠다고 하며 예비신자 교리를 받게 되었는데, 지식으로만 배우려했기 때문인지 교리 끝나고 나올 때마다 신부님에 대해 불평을 하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교리가 끝나갈 무렵 마음이 변하여 세례를 받고 '다윗' 본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남편이 회사에서 중국 주재원 발령을 받게 되어서 우리가족은 북경에서 3년간 살게 되었습니다. 중국 북경에 도착해서 우리가 살게 될 집안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우리 세 식구가 살기에는 너무 큰집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북경 한인천주교회가 중국인 성당을 빌려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미사시간 이외에는 성당을 쓸 수가 없어서 성가대가 연습할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성가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10시부터는 우리 집을 성가대 연습실로 개방했습니다. 토요일 새벽이면 집안을 청소하고 성가대가 점심으로 먹을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 집은 성가소리와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집이 되었습니다. 방마다 들어가서 파트연습을 하고 거실에 모여 피아노에 맞춰 성가를 불렀습니다. 성가대원들이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면 주방에 설거지가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오후 내내 즐겁게 일을 했습니다. 성탄, 부활 판공 때면 신부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여 성가대원들에게 판공성사를 주셨는데, 아들 방이 고해실이 되고 신부님은 아들의 책상 앞에 앉아서 고해를 듣는 거룩한 집이 되었습니다.

그런 충성 때문인지 얼마 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북경을 방문하셨을 때 우리부부가 추기경님과의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그분과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아름답게 추억됩니다. 가까이에서 뵌 추기경님은 따뜻한 유머가 있는 분이셨고 수행하고 있는 중국인 고위관리까지도 천주교에 입교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풍요롭고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뭔가를 베풀 수 있는 물질적, 환경적, 신앙적 요인이 다 들어맞아서 순조롭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행복하고 풍요롭게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고되게 훈련시키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토요일, 성가대가 연습하고 있는 시간에 동생의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죽거나 혹시 죽지 않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한국에 도착해서 본 엄마는 중환자실에 누워 몸 여러 곳이 호스로 연결되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 서서 그때까지의 내 일생에 가장 간절한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엄마의 치료를 계속해야하는지 중단해야하는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엄마가 손을 움직이고 있어"하고 제가 말했을 때, 치료를 중지하는 방향으로 가던 올케들 때문에 말을 꺼내지 못하던 막내 남동생이 용기를 내어, 아무리 힘들더라도 엄마의 치료를 더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힘든 엄마의 투병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음을 감지한 올케들의 얼굴표정과 목소리는 무섭고 날카로웠습니다. 나에게 소리 지르던 작은 올케의 눈에서 사탄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사탄이 우리형제들 사이에 개입했습니다.

회복 없는 엄마의 치료가 시작되었고 형제들의 관계는 조각 나 버렸습니다.

몇 달 뒤 3년간의 남편의 북경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우리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가서 엄마를 돌보다가 오후 늦게 돌아오고 주말이면 1박2일간 병실에 있었습니다. 엄마의 몸은 점점 더 야위고 굳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누워있는 채로 머리를 감겨드리고 젖은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가제손수건으로 입속을 양치하고 기계로 가래를 빼고 배에 뚫은 구멍으로 호스를 통해 유동식을 넣어 드렸습니다. 등과 발에 생긴 욕창을 소독하고 굳어가고 있는 팔다리지만 관절운동을 시켜드렸습니다. 소화기관이 약해졌기 때문에 늘 설사 변을 보셨는데 배설물이 기저귀를 넘치고 환자복과 침대시트까지 적셨습니다. 나무토막처럼 굳은 몸을 닦고 옷과 시트를 갈고 나면 나의 온몸에 비 오듯 땀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병실에서 나와 병원 뒤편의 작은 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인적이 드문 그곳에 앉아 묵주기도를 하며 침묵하고 계신 주님께 항의했습니다. 지금 저의 기도를 듣고 계신 거냐고 울면서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어디에서 몰려왔는지 수많은 까치 떼가 내 주변의 나뭇가지 위에 앉아 일제히 지저귀는 것이었습니다. 우연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리석은 나의 영적 수준을 보시고 눈에 보이는 표징으로 위로를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엄마의 상태는 그대로였고 소리 내어 기도도 하고 말도 붙여 보았을 때 아무 반응 없던 분이 유독 막내 남동생의 이름을 말하면 헉헉 소리 내어 흐느껴 우셨습니다. 모든 감각이 마비되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 반응을 보일 때, 자식이 부모의 생명을 놓고 어느 선에서 치료를 하고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더 불분명 하고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엄마는 1년3개월간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심신이 지쳐있던 나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고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그런 중에 마음속에 들리던 소리는 올케와 화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즈음 중림동성당 성령기도회에서 방언의 은사를 얻은 나는 용기를 내어 작은올케에게, 내가 잘못했으니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올케도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서로 화해하고 용서했지만 아직도 서먹한 감정은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상처는 치유되어도 흉터는 남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하느님이 해결해 주시리라 믿으며 기도 중에 가끔씩 올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나를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놓고 화해와 용서를 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에게 고통과 좌절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의 지금 모습은 얼마나 기고만장 할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목동에 이사 온 지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저는 쌍뚜스성가대에서 활동하고 있고 남편은 레지오 활동을 하며 신앙이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은 얼마 전 청년성서모임에서 창세기 연수를 다녀와서 하는 말이 '영혼의 샤워'를 하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불길이 가슴에 내렸을 때 기도하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신체적 성장, 지적인 성장과 더불어 영적인 성장까지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잘 자라도록 지겨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올해 50살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성장하고 저는 노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느 피정에서, 할머니가 되었을 때 손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지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마지막 모습으로 그려보는 것은 머리 하얀 할머니가 되었어도 건강하게 내발로 걸어 성당에 가서 그 달치 교무금을 내손으로 내고, 고백성사와 미사 영성체를 한 후에 집에 돌아와,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묵주기도를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고, 그대로 하늘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 소망대로 해 주실지 모르겠지만 꿈꿔보는 저의 죽음의 모습입니다.

은총을 허비한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반성해 봅니다. 더 늦기 전에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충실히 써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느님은 지금까지 당신 손위에 내 인생을 올려놓고 그 손바닥에 나를 새기셨습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기쁠 때도 고통 중에 있을 때도 나는 그분 손안에 있었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도망칠 수 없는 그분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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