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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홍보마당
작성자 레나
작성일 2010/01/14
ㆍ조회: 1336  
신앙체험 발표, 이언향 님파

2010년 1월 8일 미사 강론시간에.

안녕하십니까?

교회 안에서 평신도로서 성경을 가르치는 소임을 받고 있는, 목동본당에서도 ‘여정성경’을 강의하고 있는, 이언향 님파입니다. 강의실이 아니라, 이렇게 전례 안에서의 새로운 만남, 참 반갑습니다.

아마도 함께 가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조금, 도움이 됐으면 참 좋겠다하는 생각들에서 이렇게 강론 시간을 빌려 평신도의 참여를 계획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부족하지만, 그 계획에서 주어진, 저의 시간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소임, 즉 말씀 선포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저에게는, 잊지 않으려하는 기본이 2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제 삶 속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활동에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저 개인의 노력이고 또 하나는, 성경을 가르치는 소임을 받은 사람으로서 교회 안에서의 균형을 잃지 않아야한다는 노력입니다.

먼저, 교회 안에서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란, 교회는 세말까지 성령께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성장시켜가는, 그래서 기쁜소식의 메시지(하늘나라)를, 보다 깊고 완전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시는 긴 여정의 역사임을 존중하고, 교회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는, 때로 교회의 진리를 수호해야한다는 개인적인 열정도 있으나 교회의 긴 여정, 과거(사도와 거룩한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와 현재(신앙의 진리를 알기위해 애쓰는 교회)와 미래(하느님의 얼굴을 뵙게 되리라는 희망)라는 거대한 시간에서 함께 가야하는 그 교회의 여정에는, 존중되어야 할 법칙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을 향해 흘러가게 하시는 교회의 거대한 진리의 강물 중 물방울 몇 개에 불과한, 현재 나의 소임에, 그 개인적인 열정에 결코 지나침이 없어야한다는 노력입니다. 제 삶 속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활동에 시선을 놓치지 않음 (교회 안에서의 균형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은, 그래서,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아서, 짧지 않은 시간, 말씀 선포자로의 삶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몸 속 깊디깊은 곳에서 ‘숨’이 토해지듯, ‘그 말씀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제대로 살 수 있겠다’, 바로 그 체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뭐에요?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성당에 왜 나오세요?

편안해서? 다른 곳보다는 점잖아 보여서? 누구누구가 권해서? 방문도 하고 걱정도 들어주는 것 같아서? 뭔가 보호받을 것 같아서? 시름이 덜어질 것 같아서? 좋다니까… 네….

그런데 사실은, 편안하고 마음의 안식을 누리게 하는 곳은 성당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특히나 요즈음 Well-being하는 곳이 많지 않습니까? 성당이어야 하고 그리스도교이어야 한다는 이유는, 바로 여기가 계시종교이고, 계시종교인 그리스도교의 메시지가 ‘기쁜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 안에는, 하느님을 설명하는 길이 2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관찰해서, 이 세상을 설명하는 원리로써 하느님을 말하는 길(힌두교, 불교, 유교)이고 또 하나는, 예언자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과 교섭하시는, 하느님이 제공하는 계약으로 나가는 길을 설명하는 길(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입니다. 첫 번째 길은 연구와 사색의 길이고, 두 번째 길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자유로운 하느님과의 관계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이 두 길은 서로 다릅니다.

절에 가면 불경이 나오는데 퍽 공감이 갑니다. 이러이러해야 사람답게 사는 거다, 아주 합리적인 말인데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어떻습니까?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계약을 맺고, 당신 아들을 보내셔서…. 이런 시작이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설득력 바로 그 차이가, 하나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이 접근하셨다(계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차원, 즉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열리는 새로운 차원이 있다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퍽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열리는 새로운 차원(하느님나라)이 있다, 새로운 시선이 있다, 그것을 ‘계시’라고 하고, 그것을 믿는 종교가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성경’은, 계시(하늘나라, 기쁜소식)를 알아 본, 인간의 특별한 체험을, 인간의 언어로 절절히 표현한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성경공부는 참 ‘기쁜소식’이었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눈을 열어주셨고, 들리지 않았던 귀를 열어 주셨고, 경직된 영혼을 풀어주셨던 그래서, 저의 깊은 내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구 앞에서요? 성경 앞에서, 말씀 앞에서, 하느님 앞에서….

체험의 한 부분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보소서, 저의 쓰디쓴 쓰라림은 행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신께서는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제 목숨을 지켜 주셨습니다. 정녕 저의 모든 죄악을 당신의 등 뒤로 던져 버리셨습니다.”(이사38,17)

내 죄를, 내 허물을, 당신의 등 뒤로, 안 보이는 곳으로 다 던지시고, 그리고는 나의 원 모습만을 보시는(보고 계시는) 하느님, 세리 자캐오의,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의, 죄녀 막달레나의, 감정적이고 허약한 우리 교회의 수장이었던 베드로의, 그리고 부족한 나의 원 모습만을 보시겠다는 하느님을, 이사야 예언자가 아니라 제가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타인의 좋은 점은 모두 등 뒤로 던져 놓고, 잘못만을 눈앞에 두고 보며 입에 올리는 모습, 말씀 선포자로서, 그 분의 제자 직분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 엄청난 사랑 앞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저를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성경공부는 성경의 인물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도 나에게 말을 걸고 계시는 하느님을, 그들처럼 만나기 위해서 애가 타는 시간이었고, 삶 속에서 여간해서 보이지도 만나지지도 않는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서, 만나서 알게 된 그 하느님의 시선으로, 내 가족, 내 이웃, 내 현실 안에도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알아 보기 위해서 성경공부는, 제게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아브라함이, 모세가, 더 중요한 J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당시 사람들이 좀 혜택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것을 아는 것이 지금 이 자리, 고민하고 살고 있는 내 삶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내 삶의 체험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성경의 이야기들은 ‘그들만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화’가 된다는 것은 사람 많이 모아서 거대한 그리스도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주변이, 예수님을 체험해서 나만, 내 입장만, 바라보던 미성숙함에서 벗어나서 주변을 보고 주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뜻이고, 그래서 내 존재가 기쁜소식으로 타인에게 다가간다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많은 성경공부가 있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 성경을 통해서 지금 나를 찾고 계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고 있는가(그래서 얼마나 기쁜가). 아니면 성경공부를 통해서 수많은 지식만을 축적하고 있는가 생각해 봐야한다는 말입니다.

예, 우리들 진정한 체험이 다 그렇듯,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개인의 체험 본질을 모두 전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더 많은 성경의 나눔은, 봄 학기 시작하는 ‘모세오경’ 강의실로 미루고, 부분적이나마 조금 나누어 보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서 이 자리 역시,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또다시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해 주시리라,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 안에서, 조금이라도 제대로 살 수 있게, 그래서 기쁘게 살 수 있게 해 주시리라’ 확신하면서, 전례 안에서의 귀한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본당을 위해 많은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여정 님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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