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기도의 결과는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첫째 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 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또 둘째 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12,29~31).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계명의 핵심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주일이 되어 우리가 세속의 일손을 멈추고 하느님의 집을 찾아와서 미사 참례한다는 것은, 천지창조 때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창세 2,1)던 것에 기원을 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 미사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성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합니다. 주일 미사를 통해서 영적인 힘을 얻은 우리는, 나머지 6일 동안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할 의무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일 미사를 통해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는, 첫 번째 계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나머지 평일 중의 일상생활은 두 번째 계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과 평일의 균형,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을 맞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 사랑을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여러 차례 지적하신 바리사이의 위선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 이웃인가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카 10,29)의 비유를 통해서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측은한 마음으로 병들고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대하셨고,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돌보셨습니다. 우리도 측은한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을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식과 가족을 돌보는 일에만 삶의 초점을 맞추거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칙만을 고집한다면, 우리가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다운 일이며 신앙인으로서 가치 있고 보람된 일입니다.
교회의 문을 닫고 성당 공동체 안에서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 산다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가 힘을 모아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믿음을 실천하는 길이요, 신앙을 증거하는 길이며, 동시에 이를 통해 우리만의 교회가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교회라는 것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선교 수단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마태 5,13-15)의 역할을 다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 기도의 결과는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성당에 열심히 나오는 사람일수록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마태 7,21)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마태 7,22)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 돕는 것을 결코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며 하신 마지막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