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에 관한 주임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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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틸다 댓글 0건 조회Hit 1,656회 작성일Date 21-02-07 12:15본문
번역으로 인한 잘못된 해석을 경계하고자 주임신부님께서는 자주 번역의 근간이 되는 히브리어 단어와 그 뜻을 말씀해주십니다. 오늘도 '열병'이라고 한글번역된 표현의 원래 의미와, 성경을 번역할 때의 가이드라인까지 말씀해주시면서 '열병'이 가장의 의무를 저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위에 대한 장모의 '열불'나는 홧병일 수있다는 말씀이 비좁은 제 논리범주에는 정말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열불'나는 화난 상태의 장모에게 먼저 손을 뻗어주신 예수님의 '먼저 손을 내미시는' 행위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똑같이 절실하게 서로서로에게 행하여 할 행동이라고 말씀해주신 주임신부님의 말씀은 제 마음을 치고도 남았습니다. (물론 제가 그 겨자씨와 같은 말씀을 듣고도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좋은 땅'인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만.)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이고, 그렇기 때문에 2천년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이 달라진 사회구조속에서도 사람들의 관계속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감정 또한 그대로이겠지요. 그렇기때문에 성경에 담긴 '진실' 또한 여전히 현대의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에도 적용될 것입니다. 이 '진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100년 후에 히브리어로 기록되면서 다소 모호해진 부분이 생겼을 것이며, 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또 한번 모호해짐이 발생한 부분이 생겼을 것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할수 있고, 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밀가루가 체에 걸러지듯 빠져나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신자들과 개신교도들이 번역된 한글 단어에 매여 성경 말씀의 뜻을 왜곡하여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미워하는 도구로 또 자신들의 배척과 미움의 정당성을 두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을 심심치않게 보게 됩니다.
그런데 주임신부님께서 이런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듯, 그래서 그런 일을 경계하는 것이 강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시는듯, 늘 히브리어 어원을 설명해주시고 그렇기때문에 생각해 볼수 있는 숨겨진 행간의 상황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때, 성경은 제게, 알아들을 듯 말듯해서 멀리느껴지는 아리송한 말이 아닌 생활속에 언제나 기억해야하는 말씀으로 변하고, 신부님 말씀속 예수님은 아프고 힘든 제 마음을 위로해주시는 실존하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미사후에 신부님을 붙잡고 제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제 편이 되어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강귀석 아우구스티노 주임신부님께 이렇게 글로라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께서 신약성경을 신부님께서 이해하시는 범주내(신부님께서 가끔 '모른다'고 말씀해주시는 것도 저는 너무나 좋습니다. 성경을 모두 다 이해하는 것 처럼, 혹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처럼 말하는 분들은 제게는 위선자 바리사이들의 목소리로 들립니다)에서 풀이해주시는 시간이 정기적으로 생긴다면 기꺼이 참석하고 싶습니다. 너무 무리한 부탁이겠지요?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이고, 그렇기 때문에 2천년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이 달라진 사회구조속에서도 사람들의 관계속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감정 또한 그대로이겠지요. 그렇기때문에 성경에 담긴 '진실' 또한 여전히 현대의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에도 적용될 것입니다. 이 '진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100년 후에 히브리어로 기록되면서 다소 모호해진 부분이 생겼을 것이며, 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또 한번 모호해짐이 발생한 부분이 생겼을 것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할수 있고, 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밀가루가 체에 걸러지듯 빠져나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신자들과 개신교도들이 번역된 한글 단어에 매여 성경 말씀의 뜻을 왜곡하여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미워하는 도구로 또 자신들의 배척과 미움의 정당성을 두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을 심심치않게 보게 됩니다.
그런데 주임신부님께서 이런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듯, 그래서 그런 일을 경계하는 것이 강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시는듯, 늘 히브리어 어원을 설명해주시고 그렇기때문에 생각해 볼수 있는 숨겨진 행간의 상황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때, 성경은 제게, 알아들을 듯 말듯해서 멀리느껴지는 아리송한 말이 아닌 생활속에 언제나 기억해야하는 말씀으로 변하고, 신부님 말씀속 예수님은 아프고 힘든 제 마음을 위로해주시는 실존하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미사후에 신부님을 붙잡고 제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제 편이 되어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강귀석 아우구스티노 주임신부님께 이렇게 글로라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께서 신약성경을 신부님께서 이해하시는 범주내(신부님께서 가끔 '모른다'고 말씀해주시는 것도 저는 너무나 좋습니다. 성경을 모두 다 이해하는 것 처럼, 혹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처럼 말하는 분들은 제게는 위선자 바리사이들의 목소리로 들립니다)에서 풀이해주시는 시간이 정기적으로 생긴다면 기꺼이 참석하고 싶습니다. 너무 무리한 부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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