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50. 2024년 새해를 알차게 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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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598회 작성일Date 23-12-27 14:11본문
바쁜 일상 속에도 매일을 넉넉하고 알차게 살고 싶다면 바로 지금 이 시간을 충분히 존재하면서 머물러야 가능하지 않을까? OSV
오랜만에 명동에서 한 지인을 만났다. “수녀님, 수녀원이 이 근처라고 했지요?” 하면서 두리번거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명동성당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산다”는 나의 말에 ‘가깝다’는 표현을 도보거리로 알아들은 것이다. 그런데 돌아서 생각해보니 지인의 말이 맞다. ‘가깝거나 멀다’고 말할 때 우린 대부분 지하철이나 자동차로 움직이는 소요시간으로 이해하지만, 사실 그것은 기계의 시간이지 인간의 시간은 아니다.
우리는 가속화 시대를 살고 있다. 집안을 둘러보면 시간을 단축시키는 수많은 가전도구와 기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동차와 비행기, 컴퓨터와 모바일기기까지 ‘빨리 더 빨리’라는 저마다의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며 발명됐다. 하루를 48시간으로 늘릴 순 없지만, 48시간에 할 일을 24시간 혹은 1시간으로 단축시켜 할 순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컴퓨터 자판에서 빠르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원고를 쓰고 있다. 만약 손으로 원고를 쓴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참으로 아뜩하다. 현대문명의 발전으로 시간을 많이 벌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그만큼 우리에게 시간의 여유를 가져다주었을까? 오히려 시간은 더 없고 더 빠르게 덧없이 흘러간다는 느낌, 나만의 생각일까?
2023년이란 시간도 훌쩍 흘러갔다. “왜 이렇게 빨라!”, “일 년 동안 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산 걸까?”라는 자조 섞인 회한과 한탄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최근 한 방송에서 뇌 과학자인 장동선 박사는 “기억이 없으면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고 했다. 바쁘게 살아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이 아니라, 살아온 삶의 흔적을 뇌에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이다. 익숙한 것을 반복하다 보면 에너지를 쓰기 싫어하는 뇌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너무 뻔하고 익숙해서 저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보낸 시간은 뭉텅 잘려 휙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뇌 과학자는 시간을 길게 체험하려면 ‘새로운 경험을 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주는 자극과 흥분으로 잠깐을 의미 있게 기억할 수 있겠지만, 결국 우리의 일상은 익숙함의 범주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집안일이 그러하고 직장일이 그러하다. 평범한 우리네 일상은 익숙함이고 반복이다.
시간이 덧없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익숙함에서 오기보다 일상을 습관적으로 보내는 마음에 있지 않나 싶다. 반복되는 작은 일상에 존재로서 충분히 머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뇌는 뻔한 일상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지루하고 심심하다. 그렇기에 익숙한 일을 할 때 종종 다른 생각을 하거나 멀티태스킹으로 다른 일과 병행하기도 한다. 그러면 온전히 그 순간을 머물지 못하고 시간을 스쳐 지나가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시간의 덧없음을 한탄하지만,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는 것은 시간을 빨리 못 보내 안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 해를 길게 보내고 싶다면 지금 이 시간이 길어야 한다. 지금을 길게 보내려면 평범한 일상에 충분히 존재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영성가들은 이를 ‘알아차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지하철이란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는 불편한 나의 마음과 친숙해지는 것, 거리에서 걷고 있는 나란 존재에 초점을 두고 의도적으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그것이 ‘알아차림’이다. 깨어있는 시간은 촘촘하고 길게 느껴지며 동시에 뇌에 저장된다.
매일 지나가는 거리라도 걸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목적지만 생각하고 빨리 걸으면 코끼리가 있어도 못 보고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순례하듯 주의를 기울이고 현재에 존재한다면 매일 걷는 거리에서도 새롭고 의미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깨어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같은 일상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의미가 기억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 기억은 시간을 늦춘다. 365일을 넉넉하게 알차게 살고 싶다면 오늘 바로 지금 이 시간을 충분히 존재하면서 머물러야 가능하지 않을까?
영성이 묻는 안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젊은 부부는 서로에게 무엇을 선물할지 고민합니다. 너무 가난한 이 부부는 결국 각자가 지닌 가장 아끼는 보물을 팔아 서로에게 줄 선물을 사지요. 하지만 아내의 머리카락은 남편의 시곗줄로 바뀌었고 남편의 시계는 아내의 고급 머리빗으로 바뀌면서 결국 힘들게 산 선물은 서로에게 쓸모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반전이 더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은 우리에게 ‘선물은 쓸모 있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거지요. 이 선물은 효용가치가 없어진 것 같지만 볼 때마다 감동과 설렘으로 기억을 불러올 것이고 시간을 되돌리거나 늘려주기도 할 것입니다.
모두에게 2024년이란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365일이 아니라 단지 ‘지금’이란 시간뿐이지요. ‘지금’ 이 시간, 충분히 존재하며 머무는 ‘알아차림’의 선물 같은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가속화 시대를 살고 있다. 집안을 둘러보면 시간을 단축시키는 수많은 가전도구와 기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동차와 비행기, 컴퓨터와 모바일기기까지 ‘빨리 더 빨리’라는 저마다의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며 발명됐다. 하루를 48시간으로 늘릴 순 없지만, 48시간에 할 일을 24시간 혹은 1시간으로 단축시켜 할 순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컴퓨터 자판에서 빠르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원고를 쓰고 있다. 만약 손으로 원고를 쓴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참으로 아뜩하다. 현대문명의 발전으로 시간을 많이 벌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그만큼 우리에게 시간의 여유를 가져다주었을까? 오히려 시간은 더 없고 더 빠르게 덧없이 흘러간다는 느낌, 나만의 생각일까?
2023년이란 시간도 훌쩍 흘러갔다. “왜 이렇게 빨라!”, “일 년 동안 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산 걸까?”라는 자조 섞인 회한과 한탄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최근 한 방송에서 뇌 과학자인 장동선 박사는 “기억이 없으면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고 했다. 바쁘게 살아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이 아니라, 살아온 삶의 흔적을 뇌에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이다. 익숙한 것을 반복하다 보면 에너지를 쓰기 싫어하는 뇌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너무 뻔하고 익숙해서 저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보낸 시간은 뭉텅 잘려 휙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뇌 과학자는 시간을 길게 체험하려면 ‘새로운 경험을 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주는 자극과 흥분으로 잠깐을 의미 있게 기억할 수 있겠지만, 결국 우리의 일상은 익숙함의 범주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집안일이 그러하고 직장일이 그러하다. 평범한 우리네 일상은 익숙함이고 반복이다.
시간이 덧없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익숙함에서 오기보다 일상을 습관적으로 보내는 마음에 있지 않나 싶다. 반복되는 작은 일상에 존재로서 충분히 머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뇌는 뻔한 일상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지루하고 심심하다. 그렇기에 익숙한 일을 할 때 종종 다른 생각을 하거나 멀티태스킹으로 다른 일과 병행하기도 한다. 그러면 온전히 그 순간을 머물지 못하고 시간을 스쳐 지나가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시간의 덧없음을 한탄하지만,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는 것은 시간을 빨리 못 보내 안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 해를 길게 보내고 싶다면 지금 이 시간이 길어야 한다. 지금을 길게 보내려면 평범한 일상에 충분히 존재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영성가들은 이를 ‘알아차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지하철이란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는 불편한 나의 마음과 친숙해지는 것, 거리에서 걷고 있는 나란 존재에 초점을 두고 의도적으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그것이 ‘알아차림’이다. 깨어있는 시간은 촘촘하고 길게 느껴지며 동시에 뇌에 저장된다.
매일 지나가는 거리라도 걸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목적지만 생각하고 빨리 걸으면 코끼리가 있어도 못 보고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순례하듯 주의를 기울이고 현재에 존재한다면 매일 걷는 거리에서도 새롭고 의미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깨어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같은 일상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의미가 기억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 기억은 시간을 늦춘다. 365일을 넉넉하게 알차게 살고 싶다면 오늘 바로 지금 이 시간을 충분히 존재하면서 머물러야 가능하지 않을까?
영성이 묻는 안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젊은 부부는 서로에게 무엇을 선물할지 고민합니다. 너무 가난한 이 부부는 결국 각자가 지닌 가장 아끼는 보물을 팔아 서로에게 줄 선물을 사지요. 하지만 아내의 머리카락은 남편의 시곗줄로 바뀌었고 남편의 시계는 아내의 고급 머리빗으로 바뀌면서 결국 힘들게 산 선물은 서로에게 쓸모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반전이 더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은 우리에게 ‘선물은 쓸모 있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거지요. 이 선물은 효용가치가 없어진 것 같지만 볼 때마다 감동과 설렘으로 기억을 불러올 것이고 시간을 되돌리거나 늘려주기도 할 것입니다.
모두에게 2024년이란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365일이 아니라 단지 ‘지금’이란 시간뿐이지요. ‘지금’ 이 시간, 충분히 존재하며 머무는 ‘알아차림’의 선물 같은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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