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25주일-하늘나라는 맨 먼저 뽑혀 일한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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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470회 작성일Date 23-09-23 09:53본문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16)
오늘 비유 말씀은 우리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교우들과 특히 노동자들과 이 복음을 나눌 때, 납득할 수 없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밭 임자의 처사는 공정하지 않고 맨 먼저 온 이들의 불만은 당연하다는 겁니다. 공정하지 않은 우리 현실에 대한 반영입니다. 몇 년 전 지하철 안전문 수리공이 열차에 치여 숨지고, 화력발전소에서 기계에 끼어 숨지기도 했습니다. 모두 하청업체 20대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있는 겁니다. 오늘 하늘나라 비유의 첫 번째 청중은 맨 먼저 뽑혀 일터에 나온 이들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하늘나라 비유를 다음과 같이 각색해봅니다.
1. 하늘나라는 맨 먼저 이른 새벽부터 일한 이와 같다.
나는 새벽에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첫 번째로 뽑혔고 임금도 정당한 가격으로 합의했습니다. 뙤약볕에서 온종일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니 힘이 솟았고 기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일자릴 얻지 못한 동료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뭔가 특별했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일거리가 없어 서성이는 이들을 데려와 시도때도없이 일을 시켰습니다. 일을 마치고 품삯을 지급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맨 나중에 한 시간 정도 일한 이들도 품삯을 제대로 쳐서 받는 것입니다. 맨 먼저 와서 일한 우리 안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주인은 분명했고 단호했습니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요?”(14절)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게 됩니다. 늦게 온 동료들이 나와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것에 왜 화가 났을까? 내 임금이 깎인 것도 아니고, 손해 본 것도 없다. 주인은 나에게 시기하느냐고 했다. 사실 맨 나중에 온 이들 중에 옆집 봉순이 아빠도 있었습니다. 몸이 약하고 어리숙해 보여 공치는 날이 많은 친굽니다. 딸린 식구도 많고 몸이 불편한 노모도 모시고 있습니다. 늘 염려가 되는 친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인의 이 말이 여운으로 남습니다. 그래 난 첫째로 뽑혔고 온종일 기쁘게 일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와서 왜 실족한단 말인가. 그때 봉순이네 가족들 웃음소리가 담을 넘어 들려왔습니다. 아마 오늘 포도밭 일꾼 가정에서도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으리라. 일할 땐 몰랐는데 포도 내음이 코끝에 어른거립니다. 주인의 처사와 그 마음도 느껴집니다. 수확량도 좋고 돈도 좋지만,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모두에게 일용할 양식을 약속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시던가! 뙤약볕 포도밭도 어둠 속에 휴식을 취하고 있으리라.
2. 숙고하게 되는 노동문제는 인간 문제
한 사회의 건강지표는 그곳 노동자들이 받는 처우라 합니다. 노동문제는 언제나 사회문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사회회칙 등을 통하여 일관되게 자본에 우선한 노동의 존엄에 대한 견해를 밝혀왔습니다. 노동이 존엄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창조주의 모상으로 생겨난 인간의 인격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느님도 세상을 만드신 노동자이셨고, 우리 주님도 나자렛에서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자신을 언제나 일하는 사람으로 소개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기업 등이 이윤 창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 바탕에는 역시 인간 삶을 위해서입니다. 돈이 전부가 되면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멋진 제품이 선을 보인다 해도 사람이 상하고 죽게 되면 모순입니다.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재해 방지법, 중대재해 처벌법 등이 있지만,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하늘나라는 언제 올까요? 사용주와 노동자, 맨 먼저 온 이나 뒤늦게 당도한 이가 모두 형제로 보일 때입니다. 주님의 비유 말씀에 아하! 하며 무릎을 치는 탄성이 터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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