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나의 길을 비추시는 그리스도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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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683회 작성일Date 23-04-05 17:56본문
하루를 여는 상큼한 새벽빛과 풋풋한 생명의 봄 뜰을 그리며 입춘이 지난 거리로 나섰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을 잡고 놓지 못하는 듯, 뿌연 침묵의 그 아침은 유난히 추웠고 사각사각 내리는 진눈깨비로 길은 미끄러웠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장의 사진을 찍으며 바싹 다가오는 사진전 준비로 여념이 없었기에 전시회 주제이기도 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겨울눈 녹는 봄 뜰을 헤집고 다녀야 했지만, 오늘만큼은 하루를 미사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허둥지둥 어두컴컴한 성당으로 들어섰을 때, ‘아뿔싸!’ 그제야 저는 새벽 미사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아직 날이 밝기에는 이른 시각, 모처럼의 계획이 모두 허사가 되어버린 것 같은 허탈함으로 아무도 없는 어두운 성당에 들어가 가만히 성체 앞에 앉았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타고 조용히 내려오던 새벽빛은 어느새 성체 앞 제단과 딱딱한 장궤틀 위에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을 뿌리며 춤을 추었습니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창세 28,17 참조)라고 하였던 야곱의 마음처럼 화려한 천상 파티에 초대된 듯 그 황홀함에 한참을 취해있던 저는 조심스럽게 사진기를 꺼내어 손 삼각대를 하고, 아름다운 빛과 그림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또 담았습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어 보니 오색의 빛도, 그 현란했던 빛의 무희도 모두 사라진 채 빛바랜 감실 등불만이 성체 옆에 있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를 이곳까지 이끌어 주신 그분을 기다리며 그냥 그대로 성체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얼굴을 간지럽게 하는 것이 느껴져서 사방을 둘러보니 우측 창틈으로 새어든 가녀린 봄볕이 전자 오르간을 넘어 제게로 다가온 것입니다. 형형색색 화려한 파티복도 요란한 음악에 맞춰 춤추는 현란함도 아닌 그 빛은 미미하리만큼 작고 부드럽고 그저 고요했지만, 그 빛의 아우라(aura)는 제가 그리도 애타게 찾았던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듯한 벅찬 기쁨과 두려움으로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듯 털썩 주저 앉게 하였습니다.
이 아침, 저보다도 먼저 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토록 가까이 계신 주님을 제 생각만으로 멀리서 찾아 헤매고 다녔던 저의 어리석음을 돌아보며 흐르는 눈물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다시 그 빛을 향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비추시는 빛,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신비스럽도록 아름다운 생명의 그 빛을 온몸으로 사진에 담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 참조)
박영숙 마르타
제2대리구 명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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