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평화를 빕니다 /정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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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914회 작성일Date 22-06-18 11:22본문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태 10,13)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평화를 빕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평소 이웃에게 평화를 비는 삶을 산다. 특별히 미사 전례 중에 주님의 평화를 이웃에게 빌어준다. 내 옆의 이웃이 누구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난하든 부자든 남자든 여자든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따지지 않고 조건 없이 평화를 빈다. 평화를 비는 일에 조건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웃에 평화를 빌어주기에 합당한 사람인가? 나는 이웃이 빌어주는 평화를 받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내가 비는 평화는 올바른 지향을 가졌는가? 이웃이 나에게 비는 평화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평화를 공부해야 할 이유와 참된 평화를 누리는 조건을 찾는 일은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함이다. 평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평화를 성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모든 신자의 의무인 동시에 권리이다. 평화는 나와 이웃, 나와 자연, 나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이다.
첫째, 나를 포함하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정확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생활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약자의 편에 서고 장애인·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세상의 평화는 촉진될 것이다. 기득권을 옹호하지 않고 가진 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다. 즉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나와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 설정이다. 우리는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갈 존재다. 곧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은 우리의 본향이니,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될 일이다. 환경에 대해 각별한 인식 재고와 각성이 필요하다. 나는 지구의 순례자다. 주인이 아니다. 잠시 빌려 사는 지구를 함부로 파헤치고 개발하여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은 하느님께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아주 몹쓸 짓이다.
셋째로 하느님과의 관계 정립이다. 우리를 내신 그분의 뜻에 맞게 사는 일이다. 내 뜻대로 말고, 당신 뜻대로 사는 삶이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나를 내신 의미를 숙고하는 삶을 산다면 평화는 우리의 것이다. 평화는 온전히 주님의 뜻을 살아 내는 데 있다.
내가 비는 평화는 누릴 만한 사람에게는 주어지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소용이 없어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니 남에게 평화를 빌어주어 내가 손해 볼 일은 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노력 없이 평화만 빌어주는 행위만으로는 부족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통해 이 시대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세대 간 대화, 평화 교육과 훈련, 노동의 창출과 보장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용기와 창의성을 가지고 세대 간 대화, 교육과 노동의 길을 함께 걸어 나갑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말없이 겸손하게 그리고 용기 있게 평화의 장인이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평화를 빌고 누릴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평화를 누리고 빌어주기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늘 무언가를 매일같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기도든 공부든 이웃을 위한 작은 사랑의 실천이든 간에.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는 그 어떤 평화도 우리에게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말이 아닌 노력으로만 평화가 찾아온다. 지금 우리가 평화에 굶주려 있다면 그만큼 노력하지 않은 결과다. 평화를 위해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하였나요?
평화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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