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31. 내 눈의 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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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769회 작성일Date 22-03-01 12:48본문
농사지으러 강화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사랑반’에서 네 살 아이들을 돌보며 나는 거의 엄마가 되었었다. 웅얼거리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에 아주 분명하게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기저귀를 뗄 수 없었던 아이가 “쉬하고 싶어요” “응가하고 싶어요”라고 자기 의사를 표현할 때, 많은 순간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기쁨을 잠시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랑반에 한 아이가 학기 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가끔 복음서의 ‘들보 이야기’를 볼 때마다 이 아이를 기억하게 된다. 혁원이는 기존에 우리 반 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밝고 건강해 보였다. 유아기에는 1월에 태어난 아이와 12월에 태어난 아이의 발달 상태가 굉장히 많이 차이가 난다. 혁원이는 1월에 태어났으니 생일이 늦은 네 살 친구들에게는 다섯 살 형님을 만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혁원이는 말을 할 줄을 몰랐다. 자기 의사를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말이 안 되니 답답할 때에는 친구들을 밀어내고 꽥꽥 소리를 질렀다. 또 낮잠 시간에는 달리는 야생마처럼 곳곳을 뛰어다니며 이부자리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혁원이를 안아서 재우는 것은 내 몫이었다. 처음에는 혁원이가 내 품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한 번도 품에 안겨보지 않았던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눈을 마주 보며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했다. 그런데 내 팔에 눕히고 등을 쓸어주며 “혁원이도 힘들지?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뭔가를 확인한 듯하더니 잠시 토닥이는 내 손길에 잠이 들었다. 이후 혁원이는 잠잘 때가 되면 내 옆으로 와서 재워주길 원했다. 혁원이는 사랑반에서 지내는 동안 말로는 제대로 표현 못 하지만 인지능력도 있었고 아이들과의 또래 관계도 좋아 보였다.
그리고 혁원이가 사랑반에 온 지 한 달 만에 혁원이 엄마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솔직하게 혁원이의 상태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혁원이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녀님, 사실은 제가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그러면서 애 아빠와도 관계가 어려워져서 시골에 있는 친정에서 지냈어요. 거기에서 애를 혼자 놀게 방치했었어요. 저는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생각도 안 해봤어요. 그런데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어느 날부터인지 잠을 잘 때에 제 곁에 와서 ‘자장자장’ 하며 저를 토닥여줬어요. 아이의 손길이지만 제가 너무 위로받아서 엉엉 울었어요. 저는 단 한 번도 혁원이를 이렇게 토닥여서 재워 본 일이 없거든요.” 혁원이 엄마는 아이를 위해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물으셨다. 이후 지역 복지센터의 언어치료 교실과 병행하여 혁원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게 되었고, 혁원이는 정말 빠른 속도록 언어를 습득하여 아주 침착한 아이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혁원이 엄마의 표정이 아이와 더불어 밝아졌고, 더 건강해지셨다. 정말 순간순간은 예측할 수 없었던 마술 같은 변화였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서 어떤 결핍이나 어려움을 발견하면, 그 아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설득시키고 바꿔놓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그 결핍과 문제들의 시작점은 우리 어른들로부터 왔음을 알 수 있다. 부모로부터 결정된 상황에서 아이가 형성하는 것이고, 어른들의 선택으로 아이들의 미래가 가능하도록 결정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의식하는 문제들은 ‘눈의 티’에 비길 수 있다. 당장에 빼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보’는 문제들이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들보이고, 우리 시대의 수많은 문제에는 ‘가치관’ 혹은 ‘세계관’이 들보이다.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에 먼저 들보를 빼내고 티를 빼줄 수 있을 때에 제대로 도움이 될 수 있다. 혁원이 엄마가 자신의 아픈 상태를 인정한 후에 결국 혁원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들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혁원이의 토닥임이 엄마를 변화시켰듯이 이것은 상호적으로 일어난다. 우리에게 올바른 지도자가 필요하다면 먼저 우리 자신의 들보를 빼고, 바른 한 개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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