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꼭 본당 활동을 해야 신앙이 깊어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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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2,097회 작성일Date 21-05-13 14:11본문
[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4) 꼭 본당 활동을 해야 신앙이 깊어지는 걸까요?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헌신 없이 혼자서 하느님과 관계 맺을 수 없어
“저는 사실 본당 활동을 하면서 얽히는 여러 관계들이 좀 불편하다고 느껴져요. 반장님이 반모임 연락을 주셨을 때에도 그렇고, 이웃에 사는 친구(엄마)가 애들은 같이 주일학교 보내고 우리는 자모회 같이 하자고 했을 때도 거절했거든요. 본당 활동하는 분들은 활동을 같이 해야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고, 아이들을 신앙으로 키울 수 있다고 하시는데요…. 미사 빼먹지 않고 개인적으로 아이랑 같이 기도생활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는 정말 부족한 걸까요?”
신앙생활, 하느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잘 맺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공동체에 소속될 필요는 없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것을 달콤한 유혹이라고 여깁니다. 공동체 신앙인 가톨릭 신앙을 개인적 믿음의 표현 정도로 착각하게 하는 유혹이지요. 이 유혹이 가진 또 다른 문제는 깊은 신앙의 척도가 한 개인의 노력과 영성적 능력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오늘날 사회 안에 만연한 ‘능력주의’(Meritism)가 신앙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듯 보입니다. 최근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능력주의 신화가 가진 허구를 지적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 저 또한 여러분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나의 신앙과 하느님과 맺은 관계는 온전히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까?”
우리는 홀로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창조된 존재이며, 나의 삶의 족적 안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노력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자의 삶의 여정 안에서 스스로 성취한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 즉 성공과 결실도 사실은 많은 이들의 도움과 희생과 헌신의 바탕 위에 이루어진 것이지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사회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되고,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 하느님과 의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게 되는 데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초대하고 이끌어 준 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태중 교우로 부모님께 신앙의 선물을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성장하면서 친구나 동료, 좋은 이웃 어른을 통해서 하느님께로 초대되기도 합니다. 또한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도 우리가 성당에 재미를 붙이며 하느님께 더 깊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주일학교의 친구나 선후배, 선생님도 있고, 하느님을 더 잘 알도록 도와주신 신부님, 수녀님도 계실 것입니다. 더욱이 삶을 살아가면서 위기와 아픔을 겪고 있을 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준 많은 이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사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너를 위해 기도하네’라는 성가의 가사처럼 모든 미사 중에 우리는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지금의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된 것에는 사실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헌신 그리고 기도가 있었던 겁니다. 이와 같이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있다는 것은 큰 위로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면 성(姓)과 이름이 주어집니다. 이름에는 각자의 고유성과 인격이, 우리의 성(姓)에는 뿌리가 담겨있습니다. 세례를 통해 가톨릭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로서 공동체의 일원이 된 우리는 세례명으로 새 이름을 얻은 동시에 ‘가톨릭’(CATHOLIC)이라는 성(姓)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하늘나라 시민인 우리의 성(姓)은 ‘성공회’(Anglican Church)도 ‘정교회’(Orthodox)도 아니고, ‘개신교’(Protestant)도 아닌 바로 ‘가톨릭(CATHOLIC) 가문’의 아들, 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한 인간은 자신의 집안 가문의 전통 안에서 보호를 받고 가문의 정신을 통해 세상을 배워가고 감사하듯이, 신앙생활에서도 우리의 가문이며 뿌리인 가톨릭교회 공동체의 보호와 보살핌으로 한 사람의 신자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키우고 보살펴준 가톨릭교회 공동체에 대한 감사함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뿌리에 대한 의식을 통해 우리는 키워준 공동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 공동체에 기여할 책무를 받게 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로마 15,1)
이를 아름다운 교회적인 표현으로 애덕(愛德, caritas)이라고 부릅니다. 애덕은 작고 약한 이들을 배려하고 자신을 내어놓고 기여 하는 사랑의 덕입니다. 애덕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배우고 닮아갈 것이며 우리 안에 사랑의 깊이는 깊어져 갈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이 굳은 성인, 부모들은 신앙이 작고 약한 자녀들을 돌보고 키워 내야 합니다. 자녀들을 가톨릭 공동체라는 풍요로운 신앙의 유산과 품격 있는 전통의 숲에서 키워 내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을 홀로 두지 말고 교회 공동체에 머무르게 하십시오. 한 그루의 나무도 홀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 울창한 숲속에 있을 때 더욱 생기 있게 자라납니다. 자녀들에게 신앙 안에서 함께 자라날 친구들을 만들어주십시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하고 자신을 내어 주기도 하는 애덕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공동체 안에서 애덕을 살아가며 아이들은 하느님을 만나며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불려온 그레고리오 찬미가가 있습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Ubi caritas et amor, ubi caritas Deus ibi est) 하느님은 우리의 사귐과 나눔의 장인 공동체 안에 살아계십니다. 가톨릭 공동체 신앙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5월 9일,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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