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신앙살이] (563) 거저 주다,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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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2,534회 작성일Date 20-12-14 11:39본문
어느 자매님이 자신의 밭에서 처음으로 김장용 무를 캤나 봅니다. 손수 손수레를 끌고 공소까지 그것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시골길이라 힘들었을 텐데, 연세가 꽤 높은 그 자매님께선 힘든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수레에 무를 싣고 공소까지 오신 것입니다. 손수레에는 무가 몇 개 실렸는지 모를 정도로 뒤엉켜 있었지만, 공소까지 무를 싣고 온 자매님께선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며 가지고 오셨던 것 같습니다.
공소 미사가 끝나자 무를 가지고 온 자매님께선 손수레에 담긴 무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고, 또 다른 자매님 한 분이 나서서 신자들에게 무를 나누어 주려고 준비했습니다. 우선 무를 나누어 주려고 나선 그 자매님은 손수레에 있는 무의 숫자를 눈대중으로 몇 개라고 짐작한 모양입니다. 그런 다음 미사에 오신 분들이 몇 사람 되고 그들에게 무를 어떻게 나누어 주면 좋을지 대강 어림잡아 헤아림까지 한 모양입니다.
그 자매님은 미사를 마치고 나온 교우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부르며 ‘여기 무를 가지고 가라’고 외칩니다. 아니 외침을 넘어, 무를 전달해 주려고 이리저리 달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무를 나누어 주는 그 자매님은 미사에 오신 분들의 집안 살림살이랑 그 집 식구가 몇인지, 그래서 무를 몇 개를 주면 좋을지를 다 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는 단 한 개를 주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두 개를 집어다 주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 개 혹은 네 개를 무 줄기를 집더니 전달했습니다. 나는 그 장면을 공소 마당 한켠에서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기준인지는 몰라도 나누어 주는 그 자매님은 그날 미사에 온 모든 교우들에게 적합한 양의 무를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 더 놀라운 사실은 무 ‘한 개’를 받는 사람은 한 개로 만족해하고, ‘두 개’를 받은 사람은 그 두 개로 웃음 가득 만족해하고, ‘세 개’ 혹은 ‘네 개’를 받은 사람도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무를 나누어주는 자매님에게 ‘저 사람은 무를 몇 개 주었는데, 왜 나는 이것 밖에 안 주느냐’며 비교해서 따지거나, 행동에 토를 다는 이가 없었습니다. 무를 더 가지겠다는 욕심으로 손수레 있는 쪽으로 가서 무를 몇 개 더 집어 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밭에서 캔 무를 신자들에게 거저 주려고 가지고 온 사람이나, 이를 이웃 신자들에게 적합하게 나누어 주는 사람이나, 또한 그것을 받은 이들이나 모두가 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모습을 처음 봤지만, 공소 신자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거저 주고 나누며 행복해 했습니다.
아마도 나는 공소 신자들이 무를 나누는 것을 처음 봤지만, 다른 때에도 누군가가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 미사 후에 거저 나눴고, 그 나눔을 받은 이는 또 그렇게 무언가를 나줬으며, 그것을 받은 사람은 또 다시 감사한 마음에 다른 무언가를 나눴던 것이 분명합니다. 감사의 마음이 계속해서 서로의 마음속에 감사함을 불러일으켰던 모양입니다.
문득 죽음을 무릅쓰고 천주교 신앙을 지켜낸 신앙 선조들의 공소 생활, 교우촌 모습이 연상됐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안에서 함께 살고, 함께 기도했기에 함께 농사짓고,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교우촌 영성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내 것을 그냥 가지고 와서, 거저 주고 나누어 받고! 이 모습의 여운이 오래 갈 듯합니다. 또한 내 것으로만 채워진 내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묵상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영성이 행동으로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나를 그들에게 무상으로 내어 줄 때가 된 듯….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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