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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탐방] 삶의 순교(殉敎), 순간의 성화(聖化)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2,962회 작성일Date 20-09-27 16:01

    본문


    여름의 냄새를 기억하시나요?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뜨끈한 진초록의 냄새, 장맛비를 타고 조심조심 다가오는 젖은 땅 냄새, 더위와 맞서 싸우듯 철썩- 당차게 밀려오는 바다 냄새. 기억하시나요?

    2020년 여름의 냄새를 기억해 두지 못했는데 벌써 가을입니다.

     

    숨을 기억하시나요?

    콧구멍을 벌려 내 몸집만큼의 공기를 양껏 들이마시고, 후- 입으로 길게 내뱉던 숨, 하루하루 서로의 삶을 부대끼며 주고받던 이웃의 숨. 기억하시나요?

    생(生)을 위해 생명의 구멍을 마스크로 막아야 하는 아이러니가 찾아온 이후로, 나의 숨도, 수많은 이웃의 숨도 기억에서 흐릿합니다.

     

     

    순교자 영성이 피워낸 우리나라 최초의 자생 수도회

     

    9월 순교자 성월입니다. ‘숨’에 대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숨’을 내어놓는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건지 감히 짐작해 보려 했습니다. 그렇게 애쓰며 걷다 보니 저 멀리 순교의 색, 붉은색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위치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옛 본원인 ‘복자사랑 피정의 집’이었습니다. 생각이 주는 착시였는지, 마음가짐이 주는 믿음이었는지, 걸음걸음이 타임머신처럼 저를 과거로 데려다 놓은 듯했습니다. 이국적인 외형과 빼곡한 창문이 현실이 아닌 듯 보여 조금은 얼떨떨했지만, 이내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룬 붉은 건물이 하느님 품에 안긴 순교자 복음 정신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성모님을 중심으로 양쪽에 세워진 9명의 순교자 상(像)은 수도회의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대문을 찾아 들어가다 보니, ‘무아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님 흉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부님은 신학생 시절부터 완전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수도회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소명은 외국 수도회 입회가 아닌 한국 수도회 설립인 것을 깨닫고, 신부가 된 이후인 1953년 10월 30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를 창설하셨습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 1)이 된 한국 순교자의 복음 정신을 삶으로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수도 생활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신앙 선조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얼마나 공허한 삶을 살고 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수도회를 창설해 주신 신부님께도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뵌 적 없는 신부님 얼굴이 하도 친숙하여 흉상을 한참 바라본 후에야 벨을 눌렀습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은 작은 방이었습니다. 한쪽 벽면에는 흑백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시장을 배경으로 한 사진 속에는 잠시 내려놓았던 짐을 들고 다시금 길을 나서려는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이 사진이 왜 있을까, 무슨 의미일까 나름의 추측을 하고 있는데 이영준 모이세 수사님이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수사님은 아주 유쾌하셨습니다. 그래서 당황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제가 내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순교(殉敎)’였기 때문입니다. ‘순교’는 너무 슬프고 무겁고 아픈 일이니, 기쁘고 활기차고 밝은 에너지가 어쩐지 낯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순교’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 저의 어리석음이었지만 말입니다.

     

     

    기쁨의 원천, 면형무아(麵形無我)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는 지원기 때부터 지켜야 할 두 가지 행동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 벗은 신발을 거꾸로 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을 두 손으로 닫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수도회 영성 중의 하나인 순간의 ‘깨어있음’ 즉, 순간을 성화시키는 ‘점성(點性)정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점성정신이란,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무(無)를 닮은 존재인 점(點)처럼 비움과 겸손의 길을 걸으면서 점처럼 작은 것에도 소홀함이 없게 하는 정신이란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곳, 특별한 때가 아닌 일상 속 매 순간을 성화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제야 시장을 배경으로 한 할머니의 사진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어렴풋이 알 듯도 싶었습니다.

     

    이 점성정신은 육신의 내적, 외적, 영혼의 침묵(沈默)인 ‘순교’(나를 버림과 비움)와 맥을 잇고 더불어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마주하며 사는 대월(對越) 생활과도 이어집니다. 이러한 삶이 곧, 인간적인 본성이 없어진 무아(無我)에 하느님께서 오셔서 하느님과 내가 하나 되는 면형무아(麵形無我)에 도달하게 하는데 이것이 수도회 영성의 정점입니다. 창설자이신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님이 수도회 영성을 정립하시고 수도성을 ‘무아(無我)’로 정한 것 역시 이러한 영성을 살고자 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도회 영성을 듣고 나니 ‘순교’는 ‘숨’을 내어놓는 아픔과 비장함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사라지고 내 안에 하느님이 사시는 삶이니(갈라 2,20) 한없이 기쁘고 빛나는 삶이었습니다. 이미 우리 신앙 선조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그저 그 정신을 이어 사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부러울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내 안의 나를 죽이고 죽여도 그때마다 용케(?!) 부활하는 나 때문에 매번 괴로워하는 일이 다반사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 그대로 ‘복자(福者)’수도회가 맞다 싶었습니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그러고 보면 ‘숨’이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주님의 숨으로 산다는 건

     

    국내뿐 아니라 프랑스, 마카오, 필리핀, 동티모르, 일본, 페루에도 진출한 수도회는 작년에 처음으로 두 명의 베트남 출신 성직 수도자를 배출해 지금은 총 145명(2020년 2월 8일 기준)의 형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종신서원이 매년 끊이지 않는 양적 성장은 물론이고, 50주년을 맞은 2003년부터는 내적 성장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매년 국제 심포지엄, 국내 심포지엄을 번갈아 여는 것은 물론이고, 수도회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 미디어 사도직을 통한 다양한 소통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상 촬영과 음악 작업을 위한 장비가 곳곳에 보였습니다. 평신도와의 소통도 놓치지 않기 위해 코로나 19라는 팬데믹 상황에 맞는 대침묵 피정 프로그램도 빠르고 적극적으로 준비해 둔 상태였습니다. 그야말로 활기찬 에너지가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하느님의 숨결이 끊임없이 이어질거란 확실한 믿음이 생긴 건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그러다 문득 설명 중간중간 잊지 않고 들어가는 모이세 수사님의 재치도 수도회 영성이 빚어낸 결과인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녁 기도를 할 때마다 기도합니다. 저에게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작가’로 살다 죽는 은총을 허락해 달라고 말입니다. 제가 주님 곁으로 가고 나서도 이 세상에 남아 주님을 전할 ‘이야기’를 남기고 죽을 수 있도록, 주님이 저를 이 땅에 보내신 뜻을 이루고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가끔 기도를 마치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내 삶의 마지막에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복자 최여겸 마티아는 생의 마지막에 시를 적었다고 합니다. 그 시에 영감을 받아 김유정 발레리아 자매님이 작사를 하고,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한장호 베네딕토 신부님이 곡을 붙여 ‘순교자의 기도’라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어둠보다 어두운, 홀로 걷는 이 밤길에

    나 당신 품으로 나 당신 곁으로

    차가운 새벽 끝에 날 기다린 당신

    내 울음소리를 들어주신 당신

    나 당신을 따르리 그곳으로 돌아가리

    기다리는 당신 품으로 나 되돌아가리

    사랑하는 나의 님아 내 영혼을 받아주오

    세상 떠나 당신 향하는 나를 받아주오

     

    내 고통과 자유를 당신에게 바치리

    찢겨진 내 맘을 받아주신 당신

    만 번을 죽어서도 마땅한 이 몸을

    내 통곡 소리를 받아주신 당신

    당신을 따르리 그곳으로 돌아가리

    기다리는 당신 품으로 나 되돌아가리

    사랑하는 나의 님아 내 영혼을 받아주오

    세상떠나 당신 향하는 나를 받아주오

     

    수도원 탐방을 마친 시점에서 이 노래를 들으니, 제가 어떻게 죽는지는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려면 순간의 ‘숨’이 아름다워야 할 텐데요. 비록 마스크 안에 갇혀 있다 해도 말입니다.

     

    [평신도, 2020년 가을(계간 69호), 글 서희정 마리아, 사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서희정 마리아 제공]


    가톨릭뉴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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