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힘을 주시는 하느님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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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2,657회 작성일Date 20-10-09 13:51본문
사제로서 가장 행복한 일은 신자들이 성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으로 신자들의 믿음이 성장할 때 감사가 차오르고, 서로 친교를 나누는 모습에 덩달아 행복해지곤 하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 기쁨을 빼앗긴 기분입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이 들려주는 어둡고 우울한 소식에 휘말려 지레 맥이 빠지기도 합니다. 성당 사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니, 마음이 베이는 듯 쓰라립니다. 그럼에도 미사참례를 독려하기는커녕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의 미사참례를 극구 말리고 있으니, 기가 막힙니다.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시기가 길어지면 결국 선교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 뻔해 걱정입니다.
애송이 사제 시절, 사제가 되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장담하는 저에게 은사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제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겪는 모든 아픔과 근심걱정을 함께 짊어지는 사람이기에, 신자들의 삶을 염려하느라고 애간장이 녹아내리고 매일매일 근심걱정에 묶여 지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요즈음…. 진심으로 은사님의 일깨움이 살뜰히 다가옵니다. 솔직히 이즈막에 제가 지닌 유일한 위로는 세상은 늘 변한다는 사실 뿐인 듯 한데요. 세상의 모든 것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지금 우리네 삶을 옥죄고 있는 이 ‘사건’도 과거의 시간 속에 묻힐 날이 꼭 올 테니 말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말씀만이 변하지 않고 영원하며 무궁할 터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마음에 고여 드는 남루한 생각을 어쩌지 못하고 여쭙습니다. 이 힘든 시간을 어떻게 채우며 지내시는지? 혹여 미사참례가 뜸해진 만큼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아닌지? 어느새 미사참례는 해도 그만 빠져도 그만인 듯 여기고 계신 것은 아닌지? 미사방송을 켜고 지켜보는 것으로 신자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오해하지는 않는지? 염려합니다.
성경은 “인간은 살아서 하느님을 뵐 수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여 들려줍니다. 어느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당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는 모든 어둠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 밝고 환하며 눈부신 빛 앞에서 우리는 그 동안 저지른 모든 죄와 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공적이 많고 훌륭한 삶을 살았다 해도 하느님 앞에서는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모두가, 전부가 오로지 그분의 사랑에 의해서, 그분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은총임을 깨닫는 존재에게 허락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슬프고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고통 가운데에서도 주님께 감사를 잃지 않았던 믿음 이야기와 주님을 향한 희망으로 점철된 스토리텔링 역시 천국 가족 자격을 갖게 합니다. 주님을 뵈온 이사야 예언자가 바짝 엎드려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이유이고 빛으로 다가오신 주님의 모습에 바오로 사도가 눈이 멀고 바닥으로 거꾸러졌던 이유일 테지요.
때문에 저는 오늘 주님께서 이르신 하늘 잔치의 예복을 약간 새롭게 해석해 봅니다. 하느님을 뵙는 그 자리에 합당한 예복은 다름이 아니라 “알렐루야”라는 아주 간단한, 그럼에도 우리 하느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찬미 화답이 아닐까 생각하는 겁니다.
불현듯 주님께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라고 말씀하신 것이 요즘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예비해주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가톨릭 신앙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주님을 믿는 ‘비대면’ 신앙이니 말입니다. 애당초 그리스도인은 주님과의 비대면을 원칙으로 믿음생활을 하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지금 뜻밖에 벌어진 이 상황은 우리에게 홀로 지낼 시간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향한 깊은 묵상으로 몰입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 주어진 셈입니다. 이야말로 바오로 사도처럼 비천하거나 풍족하거나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어떠한 경우에도 적응하는 지혜를 배울 기회입니다. 난세이기에 그분과 더 친해지는 것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은총입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잔치를 산해진미가 가득하게 차려진 잔칫상이 마련된 곳으로 묘사합니다. 또한 비천한 처지라서 당했던 억울한 일, 배고프고 궁핍해서 흘렸던 눈물을 하느님께서 손수 닦아 주시는 곳이라고 증언합니다. 생각만 해도 설렙니다. 상상만 해도 너무 좋습니다. 어서어서, 그 좋은 자리에 걸맞은 삶을 살아 내리라 다짐하게 됩니다.
때문에 이런저런 기우로 힘이 빠졌던 속 좁은 사제의 자잘한 염려가 창피합니다. 어리석음이 부끄러워 머리를 몇 번 쥐어박아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손수 돌보아 살펴 이끌어주고 계신데,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주님을 믿고 계신 교우님들! 매 주일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시더라도 주님을 의심하는 일은 없기 바랍니다. 우리의 전부를 해결해주시려 함께 계시는 분을 향하여 쉼 없는 찬미를 올리기 바랍니다. 세상이 수상한 만큼 더욱 주님을 꼭 붙들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힘든 만큼 더더욱 굳게 주님께 매달려 지내기 바랍니다. 부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희망을 놓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제 저도 성전에 띄엄띄엄 지정석을 마련하며 시렸던 마음을 녹이겠습니다. 주일미사에서 자리가 모자라 십 여분을 돌려보내며 무너졌던 마음도 추스르겠습니다. 그 동안 지친 마음에 주님 말씀으로 생기를 불어넣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손수 ‘윗자리’로 옮겨 앉혀주시는 귀한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습니다.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다 함께 승리하도록 합시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가톨릭신문 2020-10-05 등록
가톨릭뉴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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