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흥미진진 성경읽기: 낯 뜨거운 인사청탁 사건 -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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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2,842회 작성일Date 20-03-08 11:35본문
[양승국 신부의 흥미진진 성경읽기] 낯 뜨거운 인사청탁 사건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어머니
흑백사진 같은 오래전 추억 속 이야기입니다. 긴 명절 연휴를 맞아 연고가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지냈습니다. 연휴 마지막날 아이 하나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신부님 해주시는 밥이 맛이 없어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닌데, 외식 한 번 하면 안 되요?” 큰마음 먹고 가까운 순대국밥집에 들어갔습니다. 순대국밥 네 그릇이 ‘짠’ 하고 우리 앞에 놓여졌는데,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가게 들어설 때부터 측은지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주인할머니는 옆 식탁 손님들의 거의 두 배나 되는 순대국밥을 말아주셨습니다. 깜짝 놀란 제가 그랬습니다. “곱배기가 아니라 보통 시켰는데요!” 할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제게 그랬습니다. “아무 소리 말고 그냥 많이들 먹어둬!”
게걸스럽게 순대국밥을 폭풍흡입하던 우리 넷을 묵묵히 바라보던 할머니, 성큼성큼 다가오시더니 아주 난감한 질문을 하나 던지셨습니다. “워매 짠한 거! 애들 엄마는?” 제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애들 아빠 아닌데요. 저는 천주교 신부예요.”라고 하기도 뭣했습니다. 그래서 살짝 거짓말을 했습니다. “헤어진 지 벌써 5년 지났네요.” 할머니는 “저런저런! 이 일을 어짠댜!” 하시며 볼펜과 종이를 갖다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여기다 전화번호 좀 적어봐. 괜찮은 과부 하나 소개시켜줄 테니. ㅋㅋㅋ”
한번은 고만고만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살던 그룹홈을 방문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년당 한 명씩 모두 여섯 명이 보육사 선생님과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저는 아이들과 최신 버전 개그도 주고받고, 게임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평소 제일 에너지가 충만해서 감당하기 힘든 2학년짜리 꼬맹이가 그날따라 심각한 표정으로 거실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아무리 물어도 묵묵부답이던 아이를 겨우 꼬드겨서 사연을 들어보니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자기보다 한 학년 밑인 막내 1학년짜리가 요즘 통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자주 ‘개긴다’는 겁니다. 자기가 한 살 형인데, 그러지 말라고 해도 ‘반말 치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등의 불편한 심기를 제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러고 있는 꼴이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애나 어른이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겁한 두 제자
예수님 시대 유다 사회 안에서도 ‘서열’은 꽤 중요했나봅니다. 당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 하늘 같은 존재였습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했습니다. 장남과 차남 사이 격차 역시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공식 모임에서 어느 자리에 앉느냐 하는 문제는 그들에게 목숨을 걸 만큼 중요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높은 자리 차지하는 데 혈안이 될 밖에요.
예수님 보시기에 그런 가식적인 행동들이 참으로 한심스러웠습니다. 예수님께서 더욱 실망하신 것은 그토록 오랜 기간 반복해서 특별교육까지 시킨 제자들마저도 아직 자리다툼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측근 제자들끼리, 그것도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싸웠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한때 야망과 출세욕으로 가득했던 야고보와 요한 사도,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살로메의 미성숙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 수난을 예고하신 후 제자단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들의 어머니가 나타났습니다. 두 아들을 옆에 세워둔 채 그녀는 예수님께 절을 하면서 일종의 인사청탁을 하였습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
인사청탁을 하러 온 어머니가 설마 빈손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 한 손에는 품질 좋은 토종꿀 한 병을, 다른 손에는 잘 키운 씨암탉 한 마리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오지 않았을까요! 사실 그녀가 보인 행동은 꽤나 민망한 모습이었지만, 용서해줄 만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두 아들이 잘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어머니로서, 예수님께 좋은 자리를 청탁하는 것은 야망이라기보다 강한 모성애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지닌 사람들은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사도였습니다. 그들은 스승님께서 건설하실 새로운 왕국에 대한 헛된 기대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지상적 통치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고, 그 나라가 세워지면 물좋은 자리, 총리 자리와 당대표 자리를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사도가 보여준 모습 중에 꽤나 남부끄러운 부분입니다. 예수님과 24시간 동고동락하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한가한 시간에 스승님께 면담을 신청하고 자신들의 속마음을 직접, 솔직히 표현하고 청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제자는 비겁하게도 어머니를 앞세워 간접적인 인사청탁을 시도한 것입니다.
아직도 갈길이 먼 미성숙한 제자들을 앞에 두고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자괴감은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시 예수님께서는 자상하고 친절하게 당신 사명의 핵심을 상기시켜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6-28)
우리 교회는 지상적인 영예와 세속적인 자리를 탐내고 추구하는 출세 제일주의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단체가 아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누군가 교회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야심과 출세욕을 충족시키고자 애를 쓴다면,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가련한 존재일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권력을 탐하고 추구하는 자는 스승 그리스도를 깎아내리고 흠집내는 세상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종교가 한 개인의 야심을 실현시켜주는 도구가 될 때, 주님께서 참으로 슬퍼하고 분노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야망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픈 야망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욕심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과 이웃을 섬기고 싶은 욕심이어야 합니다.
겸손이 빠져나가면 우리는…
사제서품 미사 후 축하의 자리에서 한마디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랜 양성 기간 끝에 거룩한 사제로 거듭난 형제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참으로 기쁘고 가슴 벅찼습니다. 동시에 다양한 감정들이 제 머릿속에서 교차되었습니다. 고마움, 대견스러움, 기대감, 등등. 그러나 반대로 이제 사목자로서 세상이라는 거친 들판에 서게 될 형제들을 생각하니 걱정, 우려, 연민의 정도 동시에 올라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새 사제들을 향한 덕담에는 본의 아니게 날이 서 있었습니다.
“사제 서품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서품이 승진하는 것, 벼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마음에 꼭 담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회로 치면 이제 여러분은 사원 가운데서도 신입사원, 신입사원 가운데서도 수습사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제로서 갖춰야 될 가장 기본적인 덕행인 겸손의 덕을 늘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서 겸손이 빠져나가고 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있을 자리는 높은 자리, 고상한 자리가 아니라, 이 세상의 가장 낮은 밑바닥이요, 끝자리라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이제 사제가 되었으니, 그간 지긋지긋하게 해온 청소나 빨래, 설거지와는 작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파릇파릇한 수습사원이니만큼, 더 자주 운동장에 나가고, 더 자주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그들과 동고동락하시기 바랍니다.”
* 양승국 - 살레시오회 소속 수도사제. 저서로 『축복의 달인』 『친절한 기도레슨』 『성모님과 함께라면 실패는 없다』 『성모님을 사랑한 성인들』 등이 있다.
[생활성서, 2020년 3월호, 양승국 신부]
가톨릭 굿뉴스 자료실 겟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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