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신앙살이] (534) 성인식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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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2,609회 작성일Date 20-05-11 22:19본문
내가 아는 40대 중반의 부부가 있습니다. 이 부부는 멀쩡한 직장을 잘 다니던 맞벌이 부부였는데, 30대 후반의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셰프’가 되겠다고 말했답니다. 사는 데 불편함 없던 부부였기에 고민할 수 있었는데, 그의 아내 역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길을 가도록 허락했답니다. 그래서 남편은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쓰고, 2년 동안 피자와 파스타를 잘 만드는 음식점에 아르바이트로 들어가 밑바닥에서부터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답니다. 오로지 피자, 파스타를 최고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 후 정식 조리사 자격증도 따고, 마침내 작고 아담한 식당을 열었습니다.
워낙 성실한 부부라 뭐든 잘 할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늦은 나이게 직장을 접고 새로 시작한 사업이라 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식당을 낸 곳이 500m만 가면 번화가이지만, 어느 외진 골목의 끝 쪽이고 주거 밀집 지역이라 과연 피자, 파스타 집이 될까…, 걱정에 또 걱정. 때마침 그 부부가 다니는 본당 주임 신부님이 동창이라, 식당 개업하는 날 저녁에 우리 두 사람이 가서 정성껏, 걱정되는 마음에 구석구석(?) 성수를 뿌리며 기도했습니다.
그 후 1년, 그리고 또 1년! 어느 덧 그 집은 그 동네의 맛집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모 방송사에서 ‘맛집 소개’를 해준다고 촬영 요청을 해도 정중하게 거절할 정도로 자기 맛에 대한 소신도 있었습니다. 나는 피자나 파스타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평소 아는 지인들이 수도원에 찾아오면 ‘내가 아는 맛집이 있다’고 자랑한 후 그들을 꼬드겨서 몇 번, 아니 몇 수십 번 그 피자·파스타 집에 가서 먹다보니, 자연히 피자와 파스타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어느 날 나는 지방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 집을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갔더니 거의 마감을 하고 있었고, 그 친구, 아니 그 ‘셰프’는 나를 보자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서둘러 마감을 끝내고, 직원들 다 퇴근을 시킨 후, 우리 두 사람은 가게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나누고 대화 했습니다.
“00아빠. 지금까지 식당을 잘 꾸려가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나는 이 가게 망하면 어떡하나 걱정에 걱정을 했는데, 이제 망할 일은 없는 거지?”
위로와 격려를 한다는 것이, 내 속마음이 툭- 나와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신부님, 저는 하느님 믿고 살지만, 또 하나 믿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뭐야?”
그러자 그 친구는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바로 ‘도장’이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이 도장의 힘을 믿어요!”
“아니, 그 도장이 뭐 길래 도장을 믿어?”
“사실, 이 도장은 스무 살 성인식 때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거예요. 그때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셨죠. 성인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책임은 도장에 있다고. 그래서 사는 동안 제 이름으로 뭔가를 계약을 하고, 그것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질 때 바로 이 인감 도장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후 저는 이 도장을 세 번 사용했어요. 집을 새로 살 때, 사직서를 쓸 때, 그리고 이 가게를 계약할 때. 그때마다, 저는 신중하게 몇 번을 생각한 후 서류에 이 도장을 찍었어요. 헤헤. 지금 이 가게, 돈을 많이 버는 곳은 아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면서 좋은 마음을 나누는 곳이 될 거라 확신은 하고 있어요. 그래서 신부님 걱정처럼 망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하하하.”
그 친구는 아버지로부터 귀한 성인식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단지 도장만 받은 것이 아니라, 정녕 삶의 책임감과 그 책임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을 함께 받았던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이 글은 가톨릭뉴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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