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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묵상] 그리스도는 혹독한 현재를 푸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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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2,830회 작성일Date 20-08-22 23:3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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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 지인 한분이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게요, 하면서 사실 현재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코로나와 너무도 길었던 장마, 그리고 기록적인 폭우, 상상하지 못할 만큼 불어난 실업과 실직…. 불안한 몰락을 역력히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부인할 수 없는 요즘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모든 문제를 ‘묶고 푸는 열쇠’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줍니다. 열쇠를 받은 것은 베드로이지만 그 열쇠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만이 해결의 주체이신 것입니다.


    ■ 복음의 맥락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의 절정이 되는 부분으로서(마태 16,13-20) 베드로가 열두 제자를 대표하여 예수님의 신원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전반부(13-16절)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신원을 고백하는 것으로, 후반부(17-20절)는 반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새 이름을 주시며 그의 신원을 알려주시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반부가 그리스도론적 고백에 집중되어 있다면 후반부는 종말론적 관점을 견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실 교회와 그 영원성에 대하여 “저승의 세력도 …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마태 13,18)이라고 선포하시기 때문입니다.


    ■ 하늘나라의 열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누구이신지? 대체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이자 핵심이 되는 질문입니다. 중요한 만큼 난해하기에 오늘 본문 자체가 반영하고 있듯이(“세례자 요한이라고… 엘리야라고…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여러 답변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모든 신학적 주제의 기조가 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나자렛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서간을 집필하였고, 복음서의 작가들 역시 동일한 주제를 모색하며 복음서를 썼습니다. 초대 교회의 이단 논쟁과 공의회 역시 이 질문에 집중하며 사활을 건 사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토록 중요하면서도 난해한 질문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던지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6,13.15) 이에 베드로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절)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라는 호칭은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에 해당하며 ‘기름부음 받은 이’를 의미합니다. 유다인들의 전통적 사고에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왕’으로 등극하여 그에 상응한 절대적 지위와 권한을 가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고백은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의 진정한 왕이시며 통치자임을 선언하는 내용인데, 여기에 베드로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초월적이고 신적인 호칭까지 첨부합니다. 구약시대 내내 이스라엘에게 계시되어 온 야훼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구현되고 드러났음을 표현하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스승에 대하여 품고 있던 이러한 인식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귀한 은총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17절)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온전히 파악하는 지식은 지성적 능력이나 훌륭한 성품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총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원을 정확히 고백한 베드로는 이제 반대로 예수님에 의해 새로운 신원을 부여받게 됩니다. “시몬 바르요나”(17절,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라고 불리던 베드로는 이제 ‘반석’(그리스어 ‘페트로스’/아람어 ‘케파’)이라는 이름을 받고 ‘반석’ ‘큰 바위’가 의미하는 것처럼 교회의 단단한 기초와 주춧돌로서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교회를 세우신 분은 예수님이시지만 베드로에게 ‘열쇠를 줌’으로써 교회의 모든 것을 ‘매고 푸는’ 권력과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 다윗 집안의 열쇠

    이러한 베드로의 역할은 이미 이사야 예언자(제1독서)를 통해 예시된 것이었습니다. 유다 임금 히즈키야의 시종장 세브나가 직권 남용으로 해임되자 엘야킴이 그 직무를 이어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엘야킴에게 “관복”과 “띠”(이사 22,21)를 주시며 세 개의 이미지를 통해 그의 권한과 직무를 알려주시는데, 그 첫 번째는 “백성의 아버지”입니다.(21절) 절대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모든 백성의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맡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하느님의 통치가 갖는 내용이며 질서입니다. 두 번째는 “다윗 집안의 열쇠”로서(22절)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듯이 엘야킴은 하느님으로부터 “다윗 집안의 열쇠”를 받습니다. 이는 다윗 왕조를 위한 모든 권한을 받게 됨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이미지는 “말뚝”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는 그를 말뚝처럼 단단한 곳에”(23절) 박는다고 선언하시는데, 이 역시 복음의 ‘반석’과 관련된 이미지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약시대에는 은유적 표현 ‘바위’ ‘반석’을 하느님께만 적용시켰기에, 이사야서는 건물의 기초를 표현할 때 ‘말뚝’을 사용한 듯합니다. ‘반석’ 위에 세워진 예수님의 교회가, 이미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말뚝’위에 세워진 천막으로 예표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교회의 열쇠를 받았지만 그 교회는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듯, 정치는 국가의 수장과 공직자들이 하지만 그들이 구현해야 할 내용은 하늘의 뜻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제2독서 참조) 이에 대한 정직한 감수성 없이 정치인 자신의 신념대로만 조직을 운영할 때 지나친 독선이나 참을 수 없는 무능함으로 모든 이의 상생과 공동선이 위협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혹독한 생태적 위기 속에 숨죽이며 혼란을 감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삶의 열쇠는, 전우주의 창조질서와 그 비밀에 대한 직관,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절대적 신앙과 충실함입니다. 혁명이나 개혁은 상대편 진영의 가식과 위선을 무찌르는 인간의 투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완성해 가시는 구원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지구 곳곳의 훼손과 붕괴에 불안해하며 하루하루를 감내하고 있는 우리의 지친 눈동자를 들여다보시며, 예수님은 오늘도 간절하고도 처연하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가톨릭신문 2020-08-18 등록
    가톨릭 뉴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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