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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틈새 기도: 작은 기도의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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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2,634회 작성일Date 20-02-13 21:53

    본문

    [특집 - 틈새 기도] 작은 기도의 힘이 세다

     

     

    본당에서 미사에 참례하고 나오는데 주임 신부님께서 나를 부른다고 상상해보자. “자매님, 총구역장을 맡아주십시오.” 아, 형제님이라면 “형제님, 남성 총구역장을 맡아주십시오.”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하자. 그 순간 나는 무엇을 떠올리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지금 잠시 상상해보자.

     

    옛날부터 신학교와 수도원에서는 눈을 뜨며 일어나는 순간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하루를 시작했다.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열심인 신자들에게는 정해진 기도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성무일도, 시간전례). 이른 새벽에 바치는 독서기도와 아침기도, 미사, 3시경(오전 9시 기도), 6시경(12시 낮기도), 9시경, 저녁기도, 그리고 끝기도. 수도원에서는 종을 쳐서 기도시간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도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기도할 수 있기 위함이다. 항상 기도하기 위해서 특정한 시간에 정해진 기도를 바쳤던 것이다.

     

    흔히 “기도생활 어떻게 하시나요?”라고 물으면 “하루에 몇 번, 모두 더해서 2시간 정도 기도합니다.” 이런 식으로 답한다. 그러나 이는 기도, 기도생활에 대한 오해이다. 기도생활이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이다. 언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가? 매 순간, 우리의 삶 전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생활하면서 하느님을 자주 잊어버린다. 하느님을 잊어버림에서 하느님을 멀리 떠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한순간도 하느님을 잊지 않으려는 삶, 매 순간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이 기도생활이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여라.”(신명 8,11 참조)

     

    그러므로 정해진 기도시간에 기도함으로써 기도하는 습관, 곧 하느님을 떠올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며, 이렇게 단련이 되어 기도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하느님을 기억하여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숨을 쉬는 것보다 더 자주 하느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권고대로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숨을 들이마시며 “주 예수님”, 그 숨을 내쉬면서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신자들 역시 나름대로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했다. 아침에 눈을 뜨며 영광송을 바치고, 아침 저녁기도, 세 번의 삼종기도, 식사 전후 기도, 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 그리고 화살기도… 그런데 왜 이렇게 자주 기도하는 것일까? 앞에서 이런 기도는 연습이라고 했다. 하느님을 기억하는 연습! 연습은 당연히 실전을 위한 것일 터. 틈을 내서 자주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글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본당 신부님의 갑작스런 부탁에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 직장에 다니느라 주일미사 참례도 겨우 하는 형편이다, 손자 돌보아야 한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 취미활동에 막 재미를 붙여서 여유가 없다, 어느 모로도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기타 등등 많은 생각이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느님이 떠오르던가? 다른 그 어떤 상황, 어려움, 그 무엇에 대한 고려보다도 하느님을 떠올리며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먼저 나오던가? 나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의 그 짧은 틈새에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먼저 떠올리기 위하여 우리는 시시때때로 기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직장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어 부서를 축소하고자 했습니다. 마침 직원을 보내달라는 곳이 있어 회사에서는 저에게 그곳으로 옮기면 어떻겠느냐 제안했습니다. 새 근무지는 근무환경도 열악하고 급여도 삭감될 것이며,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그곳으로 옮겨줄 것을 제안했지만 다들 거절한 터에 마지막으로 제게 의사 타진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설된 지 몇 년 안 된 부서인데 그 사이에 여러 명이 회사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바로 이런 처지에 놓였다면 나는 무슨 생각, 무엇을 고려하게 될까?

     

    “저는 가만히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지금 당신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십니까?’ 순간 미지의 곳으로 저를 보내고자 하시는 그분의 뜻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지금까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편했다면 이제부터는 부지런해져야 하고, 자신의 것을 덜어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새 임지에 가겠다고 회사에 말씀드렸고, 제안했던 분들은 오히려 미안해했습니다.”

     

    나의 재정적인 어려움, 출퇴근 시간의 늘어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 등등 나를 먼저 걱정하는 여러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생각들이 떠오르기 직전에 먼저 틈을 내서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것, 이것이 하루 중 틈을 내어 기도를 연습한 실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얘야, 평생토록 늘 주님을 생각하여라.”(토빗 4,5 참조)

     

    “저는 ‘오늘도 무사고 운전기사가 되게 해주시고, 제 차를 이용하는 모든 분들에게 예수님을 대하듯 행동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십시오.’라는 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택시기사입니다. 손님이 제 차를 타시는 순간, 그리고 짐이 많은 손님, 술에 취해 도로로 내려와 택시를 잡으려는 손님, 노인이나 장애인 등의 손님을 보면 그 즉시 ‘제가 사랑해드려야 할 예수님께서 저를 찾아오셨군요. 예수님, 당신을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나의 그 어떤 인간적인 판단이 들기 전에, 나 중심의 이기적인 생각이 들기 전에 얼른 틈을 내어 기도한다면 우리는 매 순간 이미 하느님과 함께 사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되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2티모 2,8) 우리는 틈을 내서 예수님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작은 기도가 우리를 하느님의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제 직장은 언덕길 위에 있습니다. 그 길은 경사가 조금 심하고 응달 지역이라 눈 내리는 겨울철엔 언덕 아래 공터에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갑니다. 지난겨울 눈 내린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언덕을 올라가는데 택배차가 그 언덕에서 뒤로 미끄러진 상태로 헛바퀴가 돌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20대 젊은 택배기사는 몹시 당황스러워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예수님, 몹시 당황스러우시지요? 예수님, 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지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에게 다가가 차를 일단 멈추고 따라오라 했습니다. 회사에서 삽과 염화칼슘 한 포대를 들고 가서 눈을 녹인 다음 천천히 차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렇게 틈새 기도, 우리의 아주 작은 기도는 내 앞에 계신 하느님을, 예수님을 볼 수 있게 합니다.

     

    * 김귀웅 -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사목국 향심기도를 담당하고 있다.

     

    [생활성서, 2020년 2월호, 김귀웅 신부]


    가톨릭 굿뉴스 자료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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