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30: 수도 전통 안에서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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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2,703회 작성일Date 20-03-21 09:34본문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0) 수도 전통 안에서의 묵상
옛 수도자들, 끊임없이 암송하며 되새겨
묵상(meditatio)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묵상을 추리나 혹은 상상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오늘날 널리 알려진 이냐시오 묵상법이나 가르멜 묵상법, 슐피즈 묵상법과 같은 상상과 추리를 요구하는 수많은 추론적 묵상 방법들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묵상의 본래 의미는 그러한 의미가 아니었다. 이 점에서 수도 전통에서는 구조화되지 않고 체계화되지 않은 단순한 묵상 방법을 제시하였다.
어원적으로 볼 때, 라틴어 medita tio(메디타시오, 묵상)는 하느님의 말씀을 내면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인 그리스어 μελτη(멜레테)에서 왔으며, 이것은 다시 어떤 것을 작게 소리 내어 중얼거림을 뜻하는 히브리어 haga(하가)에서 왔다. 그러므로 고대나 중세 때 수도자들이 묵상한다고 하면, 그것은 당연히 성경 본문을 작게 소리 내 암송하며 마음으로 그 구절의 충만한 의미를 배우는 것을 의미하였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는 멜레테가 암송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즉 고대 수도자들에게 있어 묵상은 오늘날과 같이 내적으로 말씀을 복잡하게 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 것을 입술로 소리 내어 읽고 듣는 수행이었다.
대개 독수도승들은 독방에 홀로 있을 때, 큰소리로 말씀을 암송하는 묵상 수행을 하였다. 이삭 압바는 요한 카시아누스에게 시편의 한 구절인 “하느님, 어서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시편 70,2)라는 말씀을 끊임없이 암송하는 수행을 권했으며, 대 파울루스 압바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끊임없이 암송하는 묵상을 하였다.
여기에 몇 가지 예가 있다. 어느 날 암모에스 압바와 비씨미우스 압바는 아킬레스 압바를 뵙기 위해 그의 은거처를 방문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그의 은거처 가까이 왔을 때 아킬레스 압바는 창세기 46장 3절(야곱아,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을 오랫동안 묵상하였다. 그들은 아킬레스 압바의 암송하는 묵상 소리를 듣고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의 은거처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후에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또한, 필사가였던 네세르의 이시도루스 압바도 자주 필사하다가 눈을 들어 속으로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 저를 도우소서. 내 주님, 당신을 찬미하나이다”라고 끊임없이 암송하는 묵상을 하였다.
수도 전통에서 묵상의 의미는 기억된 성경 본문에 대한 반복 혹은 암송을 뜻했다. 이에 대해 드 보궤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묵상과 같이 전적으로 내면적인 행위가 아니라, 입과 정신 모두를 사용하는 과정으로서 암송과 같다. 이것은 생각이나 느낌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어떤 본문을 암송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파코미우스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자들은 한순간도 성경 말씀이 그들을 떠나지 않도록 암송하는 묵상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하는 동안에도 성경의 어떤 구절을 중얼거림이나 암송의 형식으로 계속 묵상하였다. 이렇게 수도자들은 성경의 한 말씀을 온전히 자기의 것이 되도록 그 말씀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맛보았다.
바로 이 되새김이 수도 전통 안에서 행해진 독특한 묵상 방법이다. 고대 수도 전통 안에서 성경에 대한 묵상과 되새김은 동일한 용어로서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대 수도 전통 안에서 묵상은 종종 ‘되새김(ruminatio)’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15일,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가톨릭 굿뉴스 자료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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