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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예레미야(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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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목동성당 댓글 0건 조회Hit 2,855회 작성일Date 19-11-12 10:17

    본문

    기원전 7세기 말 유다왕국을 괴롭히던 신아시리아 제국(934-609)은 쇠퇴하고 바빌론 제국이 새로운 패권자로 부상합니다. 아직 바빌론 제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던 시기에 유다 왕국은 잠시나마 번영을 누립니다. 그러나 이 영광의 시기도 금세 깨어지고 바빌론의 군화에 유다왕국은 무릎을 꿇고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임금과 귀족들부터 백성들까지 유다인들은 바빌론으로 유배의 길을 오릅니다(기원전 587년). 마지막 불꽃처럼 번쩍이던 시절부터 절망만이 지배하는 패망의 시기까지, 40년 동안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요새 성읍, 쇠기둥과 청동벽이 되어 온 땅에 맞서고,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백성들과 맞선’(예레 1,18) 예언자, 주님의 징벌을 지켜보며 애달파한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주님은 찬양 받으소서’)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예레미야는 ‘벤야민 땅 아나톳에 살던 사제’(1,1)라고 소개됩니다. 그는 ‘아이’(1,6)일 때 주님의 부르심(1,4-10)을 받고, ‘민족들과 왕국들을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는’(1,10)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예언자로 세워져, 하느님을 저버리고 헛된 우상을 따라다니다가 그 자신도 ‘헛것’이 된 이스라엘(2,5)에게 주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했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 우상과 관련된 말과 ‘돌아오다’ ‘돌아서다’ 등 회개와 관련된 말이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것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임금부터 백성까지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2,9) ‘완고하고 반항하는 마음을 지닌’(5,23)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거짓된 말과 거짓 신들에게 기울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주님의 집-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불침의 도성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5,12-13; 8,19). 이미 히즈키야 임금 시대에 아시리아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가 물러난 적(2열왕 19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러한 희망은 헛된 것이라고 말하며 바빌론 임금에게 항복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27장). 그러자 거짓 예언자 하난야가 나서서 예레미야를 공박하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28장). 주님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건네신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을 징벌하셨습니다. 북쪽의 이민족, 바빌론 제국의 군대가 짓쳐들어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칼과 굶주림과 흑사병’(24개의 구절)의 고통을 겪다가 유배(13,19; 20,4.6; 22,22; 27,20; 57,27)의 먼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부딪혔습니다. 하난야 같은 예언자들만이 아니라, 임금과 관료들, 사제들, 백성들 모두가 그의 반대편에 섰습니다. ‘주님의 집 총감독’(성전 책임자) 파스후르는 그를 체포해 매질하고 기둥에 묶어 놓았습니다(20,1). 성전에서 행한 설교를 들은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이 그를 붙잡고 사형에 처하라고 난리를 쳤습니다(26장). 임금은 그가 적어 보낸 하느님의 말씀을 화톳불에 태워버렸습니다(36장). 그는 여러 번 체포되었고, 지하의 저수조 동굴에 갇히기도 했습니다(37,16; 38,6).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11,19)며 사람들이 음모를 꾸미고, 고향 아나톳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마라. 그렇게 하면 우리 손으로 너를 죽이겠다.’(11,21)며 협박했고, 형제들과 아버지 집안사람들은 그를 배신했습니다(12,6). 저주(15,10), 수모(15,15), 소외(15,17), 끝없는 고통(15,18), 아내와 자식도 없는 외톨이(16,1-4), 상가나 잔치에 참석할 수 없는 처지(16,8-9), 없애려는 음모와 무시(18,18), 죽이려는 흉계(18,23), 고난과 슬픔과 수치(20,18), 실패(25,3 참조)... 예레미야의 생애는 철저한 고독과 매서운 위협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말씀을 전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말과 글로만이 아니라, 여러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아마포 띠를 묻었다가 찾아오기도 하고(13,1-14), 옹기장이 집에 찾아가기도 합니다(18,1-17; 19,1-11). 멍에를 메고 대중 앞에 나서기도 하고(27-28장), 이집트에서는 큰 돌을 묻기도 합니다(43,8-13).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32장의 이야기입니다. 바빌론 임금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항복하자고 말하던 예레미야는 체포되어 갇힙니다. 그런데 이 위기의 때,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공포가 온 땅을 덮고 있을 때, 그는 친척의 땅을 삽니다. 지금은 이러한 고통을 겪지만 주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며 자유로이 땅을 사고파는 시대가 다시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배자들의 귀환(24,5-7), 새로운 계약의 약속(31,31-34), 새로운 임금에 대한 약속(23,5; 30,21; 33,15) 등 그는 절망의 때에 주님께서 이루실 새 역사에 대한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모두로부터 반대 받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인데도 그는 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을까요?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할(20,14-15) 정도로 분명 예언자는 힘들어했습니다. 다섯 개의 고백록(11,18-12,6; 15,10-21; 17,14-18; 18,18-23; 20,7-18)이 그의 고통을 잘 말해줍니다. 그럼에도 그에게 주님의 말씀이 ‘기쁨이요 즐거움’(15,16)이며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20,9)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 일단의 무리에 의해 이집트로 강제로 끌려가서도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그치지 않고 수행한 것(42-44장)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맞서 반대의 말을 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작은 일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일일 때, 공공연하게 다수의 의견과 반대의 말을 한다는 것은 신변의 위협까지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예’ 또는 ‘아니요’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이, 예레미야 같은 이가 더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가톨릭굿뉴스 자료실퍼옴[2019년 5월 12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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