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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묵주기도성월- 전교의 달(2018/10/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목동성당 댓글 0건 조회Hit 3,056회 작성일Date 19-11-11 16:08

    본문

    ◎ 묵주 기도로 이슬람 제국을 이기다
    □ 16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지중해를 장악하고 그리스도교를 믿는 키프로스를 점령하자, 성 비오 5세 교황은 그리스도교 국가들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대항하였다. 비오 5세 교황은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며 묵주 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하면서 전투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묵주를 나누어 주었다.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해전1)에서 그리스도교 연합군들이 승리하자 비오 5세 교황은 이날을 ‘승리의 성모 축일’로 정하였다. 나중에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기념일’로 이름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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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판토 해전(Paolo Veronese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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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비오 5세 교황(1054~1572)

     □ 1883년 레오 13세 교황은 10월을 ‘묵주 기도 성월’로 정하고, 성모 호칭 기도에 ‘묵주 기도의 모후’를 추가하였으며, 묵주 기도 신심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 묵주 기도의 기원
     
    □ 고대에는 신에게 자신을 봉헌한다는 의미로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쓰는 관습이 있었다. 가톨릭 신자들도 기도 대신 장미꽃을 하느님께 바치곤 하였다. 박해 시대 사자의 먹이로 콜로세움에 끌려가던 신자들은 장미꽃으로 만든 관을 썼다. 박해를 피한 신자들은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관을 한 데 모아 꽃송이 하나마다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들은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면서 기도의 횟수를 세곤 하였다. 죽은 자들을 위해 시편 50편이나 100편을 외웠는데, 글을 모르는 사람은 시편 대신 주님의 기도를 그만큼 바쳤다.
    □ 묵주 기도의 형식이 완성된 것은 중세이다. 중세 수도자들은 매일 성무일도를 바쳤는데, 150편의 시편을 빠짐없이 바치기 위해 숫자를 헤아리는 도구를 사용했다고 한다. 수도원 근처의 교우들이 이를 본받아 주님의 기도를 150번씩 바치다가 성모 신심이 깊어지면서 현재의 성모송을 바치는 묵주 기도로 발전하였다.
    □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발표, 2002년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를 ‘묵주 기도의 해’로 선포하였다.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관상하고 복음의 핵심에 다가가는 데 묵주 기도가 매우 훌륭한 방법임을 강조하면서 더욱 완전한 ‘복음의 요약’이 되도록 기존의 세 가지 신비(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에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나자렛 생활에 이어 공생활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를 덧붙였다.

    ◎ 성모님께 드리는 장미꽃다발 ‘묵주 기도’
    □ 13세기 프랑스의 알비파2) 신자들이 툴르즈 지방을 침략하자, 성 도미니코3)는 신자들에게 묵주 기도를 권장하였다. 이때 초대 교회의 신심과 연결된 장미 꽃다발, ‘로사리오’라는 말이 등장하였다.
    □ 묵주를 ‘로사리오(Rosarium)’라고 부르는 이유는 로사리오가 장미 꽃다발(花冠)을 뜻하기 때문이다. 묵주알을 열 개씩, 보통 다섯 마디로 엮어 얼핏 불교의 염주와 비슷해 보이지만, 염주와 무관하다.
    □ 묵주 기도는 소리 기도와 마음 기도로 되어 있다. 소리 기도로 성모송 열 번, 주님의 기도 및 영광송 각 한 번씩 한다. 이것이 1단(端)이며 한 꿰미는 5단 또는 15단으로 이룬다. 그리고 마음 기도로는 환희, 빛, 고통, 영광의 네 신비로 되어 있으며, 각 신비는 5개의 묵상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환희의 신비’는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 ‘빛의 신비’는 예수의 공생활을, ‘고통의 신비’는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 희생, ‘영광의 신비’는 예수 부활과 승천, 성령 강림, 성모 승천을 묵상한다.
    □ 묵주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바칠 수 있지만 미사 중에는 드리지 않는다.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 가톨릭에서 10월은 전교의 달이기도 하다. 전교란 복음을 널리 전한다는 말이다. 1926년 비오 11세 교황은 매년 10월의 끝에서 둘째 주일을 ‘전교주일’(Mission Sunday)로 정하고, 선교를 위한 기도와 활동을 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날 ‘특별헌금’은 교황청 전교회5)로 보내져 선교 지역의 교회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돕는데 쓰인다. 한국 천주교회는 1970년 10월을 "전교의 달"로 정하여 전교에 더욱 관심을 갖도록 하였다.

    1) 레판토 해전 
    레판토는 그리스 중서부 코린토스만 북쪽에 있는 항구도시로 그리스명은 나브팍토스(Navpaktos)이다. 레판토 해전은 역사상 유명한 전투 가운데 하나이자, 오직 노를 젓는 전함들만으로 치러진 마지막 해전이다. 1571년 10월 7일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 비오 5세 치하의) 교황령, (나폴리와 시칠리아, 사르데냐를 포함한) 스페인 왕국과 제노바 공화국, 사보이 공국, 몰타 기사단 등이 연합한 신성 동맹의 갤리선 함대가 오스만 제국과 벌인 해상 전투로 오스만의 전투용 갤리선 함대를 결정적으로 패배시켰다. 전투 이후 신성 동맹은 일시적으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여 로마를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고, 유럽을 향한 오스만 투르크의 팽창을 저지하였다. 에스파냐의 소설가 S. M. 세르반테스가 참가한 해전으로도 유명하다.

    2) 알비파(Albigensianism)
     
    10세기경 불가리아 카타리(Cathari) 이단의 추종자들로 12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세력을 떨쳤다. 프랑스 남부 알비라는 도시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이들은 마니교 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먹고 마시는 것, 결혼과 출산, 물질의 소유 등 육체적인 것은 악하므로, 물질적인 것을 포기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완전한 자’가 되며, 일반인들은 하느님께 버림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완전한 자’로 불리는 알비파 성직자들의 금욕적인 생활은 일부 가톨릭 성직자들의 부도덕적인 생활과 대조되어 일반인들의 존경을 받기도 하였다. 1213년 시몬 몽포르가 이끄는 십자군에 대패한 후 몰락하였다. 이후 알비파를 비롯한 이단 활동을 단죄하기 위하여 이단심문제도가 생겨났다.


    3) 성 도미니코(Dominicus, 1170~1221)
     
    1170년 스페인 북부 칼라루에가에서 태어나 문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1203년 외교 사절로 북부 유럽을 여행하면서 알비파의 이단 활동을 목격하고 사도들과 같은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포하는 설교자회의 필요를 느꼈다. 1216년 수도회 설립을 승인받은 후 이단의 오류와 올바른 교리 설교를 위해 활동하다가 1221년 사망하였다. 1234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4) 성모 대성전(영: Saint Mary Major Basilica 이: Basilica della Santa Maria Maggiore)
     
    로마의 4대 바실리카의 하나로 일명 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라고 한다. 한국식 옛 명칭은 성모설지전(聖母雪地殿)이다. 리베리오 교황(352-366 재위)가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 창건, 식스토 3세 교황(432-440 재위)가 재건하였다. 성모 마리아가 로마의 한 귀족에게 나타나 한여름에 눈이 내리게 해서 성당을 지을 장소를 정해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5) 교황청 전교회
     
    교황청 전교회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선교 의식을 일깨우며, 선교 지역 교회에 대한 원조 계획과 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1822년 프랑스 리옹에서 마리 폴랭 쟈리코가 기도와 나눔으로 선교사들을 도울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844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인준을 받아 1922년 교황청 전교기구의 산하기구로 승격되었다. 10월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주일인 ‘전교주일’을 주관하여 세계 선교를 위한 특별 기도와 헌금을 실시한다.

     

                                  * 위 글은 마산교구 홈피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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