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녀 소화 데레사와 성경(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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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동성당 댓글 0건 조회Hit 3,495회 작성일Date 19-11-11 16:09본문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녀 소화 데레사와 성경
이달부터 몇 회에 걸쳐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을 살펴보며, 성녀가 어떻게 성경을 소화하면서 이를 자신의 영성에 통합하고 영적 여정의 양식으로 삼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누구인가?
소화 데레사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아버지 루이 마르탱과 어머니 마리아 젤리 게렝 마르탱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9남매 중 막내인 데레사는 부모와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과 언니들의 가르멜 수녀원 입회로 충격을 받아 성녀의 유년기는 그리 평탄치 못했습니다.
그 후 성모님을 체험하여 상처가 치유된 성녀는 그때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결국 성녀는 바이유의 주교와 당시 교황인 레오 13세에게 허락을 받아, 1888년 4월 9일 열다섯 살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이듬해인 1889년 1월 10일 착복과 동시에 수련을 받고 1890년 9월 8일 수도서원을 발했습니다. 1893년부터 성녀는 수도회의 부수련장으로서 수련장을 도와 임종 전까지 수련자들을 동반하는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자신의 독창적 영성이 담긴 ‘작은 길’을 몸소 실천하고 가르쳤습니다.
1895년 6월 9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성녀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였습니다. 바로 그날 “예수께서 얼마나 사랑받기 원하시는 지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잘 깨닫는 은혜”(자서전 A)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닷새 후에는 ‘사랑의 상처’라는 신비적 은총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음해인 1896년부터 성녀는 폐렴 증세를 보이면서 각혈을 합니다. 그 후 병세가 악화되어 1897년 9월 30일,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1923년 4월 29일에 소화 데레사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諡福)되고, 1925년 5월 17일에 시성(諡聖)되었습니다. 1927년 12월 14일에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선교와 선교사들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되고, 선종한 지 100년이 지난 1997년 10월 19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교회박사로 선포됐습니다.
잠언 9,4에서 영적 어린이의 길을 발견하다
성녀는 어려서부터 대(大)성인이 되고자 하는 대담한 원의를 품었습니다. 소화 데레사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사랑의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길이란 자기 비허(脾虛)의 길이자 완전한 내적 가난의 길이었습니다.
성녀는 이 여정에서 자신이 작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체험하고 이를 겸손하게 인정하며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받아들이는 작은 자가 되었을 때,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잠언 9,4)는 말씀과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이사 66,12-13)는 말씀으로 작은 자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발견하기에 이릅니다.
이렇듯 성녀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그분께 맞는 사랑이 없음을 깨닫고 이내 하느님의 신적(神的) 사랑을 청했습니다. 그 사랑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신뢰하고 의탁할 때, 그분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한 길이 바로 신뢰와 의탁의 ‘작은 길’입니다. 이는 나중에 ‘영적 어린이의 길’로 불리게 됩니다. 이 길은 성성(聖性)으로 나아가는 데 인간이 자신의 노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기대는 것입니다. 성녀는 이를 고층으로 곧바로 오를 수 있는 지름길이란 뜻에서 ‘영적 엘리베이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1코린 12장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깊이 체험한 소화 데레사는 그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기 위해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며, 이 세상을 위해 군인, 사제, 사도, 학자, 순교자, 선교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되기란 현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성녀는 자신의 모든 원의를 실현할 방법을 찾고자 했으며, 결국 모든 것을 움직이는 힘은 ‘순수한 사랑’이라는 진리를 깨달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한 지체로서(1코린 12장 참조) 다른 모든 지체에 영적 힘과 빛을 주는 교회의 심장인 사랑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 사랑이 되기 위해 성녀는 평범한 일상에서 희생을 실천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성녀는 선교에 대해 커다란 열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는 훗날 성녀를 선교의 주보 성인이 되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임종하기 전 병중에 있을 때 성녀는 깊은 신앙의 어둔 밤을 거치게 되는데, 당시 그 어둠에서 신앙을 잃어버린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필요한 모든 사람과 연대하고자 했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구체적 삶을 통해 현대인이 복음의 심오한 메시지에 쉽게 다가서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죄를 넘어 다가오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성녀는 이를 통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일상의 ‘작은 것들’로 표현함으로써 누구나 일상도(日常道)로써 성성에 나아가도록 가르쳤습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5월호(통권 470호), 윤주현 베네딕토]
카톨릭 굿뉴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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