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영성] 마음의 변화 이루는 11월이 됩시다(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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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동성당 댓글 0건 조회Hit 2,549회 작성일Date 19-11-11 16:13본문
[레지오 영성] 마음의 변화 이루는 11월이 됩시다
제가 생활하는 사제관 냉장고 안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곧바로 꺼내어 먹을 수 있는 김치를 비롯한 각종 반찬들이 있고, 또 맛있는 과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달달한 아이스크림 역시 냉장고 안에 있어 언제든지 곧바로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냉장고 안에는 이렇게 곧바로 먹을 수 있는 것만 있지 않습니다. 냉동실 안에 꽁꽁 얼려 있는 국이나 밥이 있으며 음식의 맛을 돋우는 파나 마늘, 고추 등 역시 그냥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곧바로 먹을 수 없는 것들을 필요 없다고 버릴까요? 아니지요. 데워서 먹거나 아니면 조리를 해서 먹으면 아주 맛있는 음식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도 이 냉장고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곧바로 꺼내어 놓을 수 있는 행복이 있는 반면에, 본인의 노력과 정성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고통과 시련입니다. 솔직히 고통과 시련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는 나의 것으로 간직하기에 너무나 힘듭니다. 그 무게가 너무 크고, 어려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고통과 시련을 무시하고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마치 음식을 요리하듯이 정성과 노력을 통해서 소중한 나의 행복한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순간적인 만족과 편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순간도 피하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의 변화가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세상 안에서 기쁘고 힘차게 살아줄 수 있는 힘이고, 더불어서 이 세상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11월 위령성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입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려 지는 것은 아마 ‘죽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고 영원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문이라고 하지만,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모든 만족을 누렸다고 해도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가 없다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삶은 짧고,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은 영원의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이 세상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고통과 시련의 무게로 좌절할 때 마음을 바꾸는 속도 내야해
과연 내 모습은 구원의 길에서 가까운 지, 혹시 잠시 동안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세상 안에서의 만족만을 위해서 주님의 뜻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7)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이제는 주님 곁으로 가야할 때입니다. 더 이상 후회의 삶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진정한 마음의 변화가 아닐까요?
어렸을 때에 가장 신기했던 것이 ‘비행기’였습니다. 이 큰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거운 것은 당연히 아래로 떨어져야 하는데, 500톤이나 되는 무게의 비행기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가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 당시 저의 큰 궁금증을 풀어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선 답부터 말씀드리면, 비행기가 떨어지지 않고 날 수 있는 것은 ‘속도’ 때문입니다. 긴 활주로를 시속 100Km, 200Km, 300Km로 계속해서 속도를 올려서 빠른 속도로 달리다보면 비행기의 무게가 속도에게 잡혀 먹혀서 하늘을 날 수 있는 가벼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500톤이나 되는 무게가 가벼워봐야 얼마나 될까 싶지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멩이를 던질 때를 잘 생각해보십시오. 돌멩이를 위에서 떨어트리면 자동적으로 땅을 향합니다. 그런데 돌멩이를 손에 들고서 힘껏 던지면 어떻습니까? 곧바로 땅에 떨어지지 않고, 앞으로 쭉 날아갑니다. 바로 돌멩이에 속도가 붙어 있는 상태에서는 돌멩이의 무게가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공중에 떠 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속도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돌의 무게가 다시 증가하게 되면서 중력에 의해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생각하면 더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자동차가 시속 100Km 정도로 달릴 때의 무게는 글쎄 500g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추돌 사고를 내면 마치 종이를 구기듯이 심하게 구겨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도 이렇게 속도를 내야지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그냥 저절로 힘을 빼놓고 있어서는 어떠한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고통과 시련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점점 좌절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떨어지지 않도록 속도를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스스로의 노력과 정성을 다해서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좌절이 아닌 희망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가 있습니다.
11월 위령성월을 맞이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바꿔서 주님을 향하면 어떨까요? 그 방향에 맞춰서 속도를 내면 낼수록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1월호,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갑곶성지 전담)]
카톨릭 굿뉴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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