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티스코 교황의 십계명 교리 2 - '열가지 말씀들(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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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동성당 댓글 0건 조회Hit 3,208회 작성일Date 19-11-11 16:00본문
십계명에 관한 교리 (2) 계약에 따라 살기 위한 “열 가지 말씀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2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을 통해 십계명에 관한 교리 교육을 이어나갔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일반알현은 두 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곳 광장에 있는 우리들과 바오로 6세 홀에서 대형 화면을 통해 우리와 연결된 200여 명의 환우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바오로 6세 홀에 있는 환우들에게 박수로 인사를 전합시다. [박수]
우리는 지난 수요일 십계명에 대한 교리 교육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관점을 더 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 안에서 십계명은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으며, 관계의 한 부분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계약의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탈출기 20장의 시작이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1절)라는 것을 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는 다른 어떤 시작과 같아 보이지만, 성경 안에는 그 어떤 것도 사소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이 계명들을 선포하셨다”라고 말하지 않고, “이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 전통은 십계명을 항상 “열 가지 말씀들(le dieci Parole)”이라고 부릅니다. “십계명”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 저자는 이 대목에서 “열 가지 말씀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십계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명령과 말씀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명령은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방적) 통보입니다. 반면, 말씀은 대화처럼 관계의 필수적인 수단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당신 아드님께서는 육화되신 말씀입니다. 사랑은 말로 길러집니다. 교육이나 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두 사람은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우리 마음에 말하면 우리의 고독은 끝납니다. 하나의 말을 받으면, 소통하게 됩니다. 계명들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열 가지 말씀 안에서 말씀하시며,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십니다.
명령을 받는 것과 누군가가 우리와 대화하려고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대화는 진리의 전달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봄의 마지막 날입니다. 무더운 봄이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이는 진실이지만 대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이번 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말한다면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계명들은 대화입니다. “대화는 말하는 기쁨과 말을 매개로 하여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전달되는 구체적인 선을 통해 실현됩니다. 이 선은 사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 안에서 서로를 주고받는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li gaudium), 142항 참조).
그러나 이 차이점은 인위적인 게 아닙니다. 세상 시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유혹자, 곧 악마는 남자와 여자를 다음과 같이 속이고 싶어합니다. 곧, 하느님께서 그들(인간들)을 당신에게 복종시키기 위해 선악과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키려 했습니다. 도전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첫 번째 규칙은 금지하고 강요하는 독재자의 명령입니까, 혹은 자녀들을 돌보고 자기파괴로부터 보호해주는 아버지의 배려입니까? 말씀입니까, 혹은 명령입니까? 뱀이 하와에게 말한 여러 가지 거짓말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질투하는 신(“결코 그렇지 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너희들을 질투하기 때문이다”)과 소유하는 신(“하느님께서 너희들이 자유를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에 대한 암시입니다. 사실은 뱀이 거짓말을 했다는 걸 극적으로 보여줍니다(창세 2,16-17; 3,4-5 참조). 뱀은 (그들로 하여금) 사랑의 말씀이 명령이라고 믿게 했습니다.
사람은 이러한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강요하시는가? 아니면 나를 보살펴 주시는가? 하느님의 계명은 단지 규범인가? 아니면 나를 보살피시기 위한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가? 하느님은 주인인가? 아니면 아버지인가?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를 결코 잊지 마십시오.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속된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녀입니까? 우리 내부와 외부의 이 싸움은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노예 기질과 자녀 기질 사이에서 수 천 번이라도 선택해야합니다. 명령은 주인으로부터 오고, 말씀은 아버지로부터 옵니다.
성령께서는 아들의 영이고,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노예 정신은 억압적인 방식으로만 율법을 받아들이며, 두 가지의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의무와 책무로 짜인 삶, 혹은 폭력적인 거부 반응입니다. 전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율법의 문자에서부터 생명을 주는 성령으로 넘어가는 과정입니다(2코린 3,6-17 참조).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명령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우리를 단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한 남성이나 여성이 이 과정을 살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그리스도인이 자녀로서 생각하는지 아니면 노예로서 생각하는지 잘 압니다. 우리 역시, 우리들의 교육자들이 우리를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보살펴 주었는지, 아니면 우리에게 단지 규칙만을 강요했는지를 잘 기억합니다. 십계명은 자유를 향한 길입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이 여정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율법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돌봄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자녀의 마음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자녀의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바티칸 뉴스, 2018년 6월 20일]
카톨릭 굿뉴스 자료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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