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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신앙에 대하여 [월간 꿈 CUM] 기적의 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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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994회 작성일Date 24-07-03 14:24

    본문


    OSV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보면 신앙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움직여진 의지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의 진리에 동의하는 지성적 행위이다.”(155항)

    “신앙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무상으로 베푸시는 선물이다.”(162항)

    “신앙은 우리가 이 지상에서 순례해가는 목표인 ‘지복직관’(visio beatifica)의 기쁨과 빛을 미리 맛보게 해 준다. 그때에 우리는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 보고’(1코린 13,12), ‘그분을 있는 그대로’(1요한 3,2)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이미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다.”(166항)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당신이 어떤 분이시고 누구이신지 인간에게 알려주셨다는 것이죠.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진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보여 주셨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 당신 자신을 계시한 내용 중 핵심은 ‘인류를 구원해 주시는 분’ 이라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 본성에 참여할 수 있고, 그 결과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신앙의 핵심 내용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삶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응답의 생활입니다. ‘믿는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응답을 하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자 구원자시라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신뢰를 해야 그분의 말씀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알려면 지성이 필요하고,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물론 신앙의 신비를 우리가 지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 이성으로 접근할 수 없는 하느님 신비의 영역이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말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성으로만 온전히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의지적인 선택입니다. 이성을 뛰어넘는 어떤 인격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 결단에는 체험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영적 체험은 하느님의 계시 내용이 희망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실제로 영적 체험이 없다면 신앙의 내용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이성만으로는 신앙에 접근하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삶이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신앙 안에서 오는 역동적인 희망을 느끼기 힘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신앙인은 하느님만이 변하지 않는 유일한 희망이고 뿌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오늘날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신앙인은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의 삶으로 초대합니다. 복음화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자신의 변화와 희망을 통해서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천적인 행위, 그 삶의 결과가 바로 복음화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변화를 체험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신앙을 전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삶의 변화를 가져온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삶으로 초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화입니다.

    신앙이 올바로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응답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앙의 기본이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우리가 살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회개의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완전히 희생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희생이 가치 있는 희생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의 회개의 삶이 필요합니다. 응답하는 삶이란 회개하는 삶이고, 적극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제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면서 하는 행사 중의 하나가 예수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조그만 십자가를 하나씩 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골고타를 올라가는 그 길을 실제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체험을 합니다. 그러면 함께 성지순례하시는 많은 분들이 서로 먼저 십자가를 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면서 감격과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때 십자가를 예수님과 함께 지고 가고 싶은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지셨던 십자가를 본인이 평생 지고 가고 싶은 것일까요? 아마 모르긴 해도 평소에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먼저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지순례를 가면 먼저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글 _ 정치우 (안드레아, 복음화학교 설립자) 
    정치우는 ‘복음화’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1990년대 초, ‘세계 복음화 2000년’이라는 화두를 한국 교회에 던졌다. 가톨릭 평화방송 TV에 출연, ‘정치우의 TV 복음화학교’라는 제목으로 48개의 강의를 진행했으며,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를 하는 등,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이 있어 걸어갑니다」, 「위대한 기적」, 「위기의 대안으로서의 평신도 영성」 등이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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