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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 돌아섬 [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24)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923회 작성일Date 24-08-30 00:06

    본문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요나 3,8)

    ‘회심’과 관련해, 예전 영성신학 교수 신부님의 체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신부님은 중학생 시절 친구들 서너 명과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과외공부를 했는데,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중학생이 보아서는 안 될 영화 초대권을 가져와 과외 수업에 가지 말고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좋다고 해서 신부님도 어쩔 수 없이 ‘학생 불가’ 영화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찜찜한 마음으로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내려야 하는 정거장이 가까이 올수록 가슴이 뛰더랍니다. 이윽고 내려야 할 정류장이 가까이 보일 때,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돌아오는 기특한 아들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리시는 엄마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때 죄란 무엇인지를 가슴 아프게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진정 그때의 죄란, 중학생이 보아서는 안 될 영화를 본 것도, 과외수업을 하지 않은 것도, 엄마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던 것도 아닌, 사랑하는 아들을 굳게 믿고 기다리셨던 엄마의 사랑을 저버린 것, 그것이 죄였노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 뒤 신부님은 다시는 그 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태초에 낙원에서 첫 인간이 저지른 원죄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린 죄’였습니다. 오늘날 역시 우리가 저지르는 죄의 근원은, 우리 또한 인간 사랑이 가없으신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 베네딕토 수도회의 노트커 볼프 총아빠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신다. 그분은 인간을 미치도록 사랑하시는 것으로 당신 존재를 드러내신다. 사랑에 빠지면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니 인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당신을 온전히 내어 주시는 하느님께서 완전히 미쳐버리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느님은 우리와 가까이 계시고자 당신을 아주 인간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가장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드러내신다.”(노트커 볼프,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 분도 출판사, 49~50쪽)

    그토록 인간을 사랑하신 충만함의 사랑이,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인간이 되시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사랑의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란,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느님 사랑을 거스르는 모든 것입니다. 회개와 회심은 그 같은 하느님 사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탕자의 진실한 자세로 벌떡 일어나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루카 15,18)라고 절절히 통회하며 사랑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체코의 토마시 할리크 신부는 죄에 대해 이렇게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악행, 악담, 그릇된 생각을 하는 것뿐 아니라 착한 일을 게을리하거나 위임받은 탤런트를 파묻는 일도 죄(잘못)로 간주한다.”(토마시 할리크, 「그리스도교의 오후」, 분도 출판사, 57~58쪽)

    우리는 이웃에게 폭행을 하거나 못된 생각을 하거나 욕을 했을 경우, 혹은 상처를 주거나 물건을 훔쳤을 경우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주일 미사에 빠진 것만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죄임에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 같은 원초적인 죄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보다 더 적극적인 죄의 근원으로 내려가 우리가 깨닫고 회심해야 할 죄란,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부르시며 사랑 안에서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사랑의 기대를 저버린 것입니다.

    이기주의와 희생이 없는 삶, 사랑의 열정이 식어버리고 희망을 향한 투신의 삶이 없는 죽은 믿음, 나태와 게으름과 집단 나르시시즘의 늘어진 변화 없는 신앙, 이 모든 죄에 대한 통절한 회개와 회심이 있을 때, 오늘 요나가 건네 오는 믿음의 독백이 하느님 징벌을 넘는 현실의 축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요나 3,9)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가슴에는 용서를 품고 계십니다.”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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