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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속 기도 이야기] 고통 속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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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098회 작성일Date 24-09-0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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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같이 하느님과 한 개인의 씨름을 다룬 고백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기록된 예례미야의 다섯 개 고백은 아주 오래되었으면서도 하느님께 따지는 고통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치욕과 비웃음을 당하지만, 자신의 기쁨이자 즐거움인 그분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기에 침묵할 수도 없습니다.(예레 15,15-16) 그는 자신의 사명 때문에 자신이 처하게 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화를 내고 따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을 계속 신뢰합니다. 그의 마음은 양쪽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습니다. … 그럴지라도 당신께 공정성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의 길은 번성하고 배신자들은 모두 성공하여 편히 살기만 합니까?”(예레 11,20;12,1)


    큰 고난을 겪는 예레미야는 자기를 박해하는 이들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닥치게 하시고 그들을 부수시되 갑절로 부수어 주소서.”(예레 17,18)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지 마시고 … 그들을 당신 앞에서 거꾸러지게 하시고 당신 분노의 때에 그들을 마구 다루소서.”(예레 18,23) 나아가 자기의 운명을 욕하며 신세 한탄을 합니다. “저주를 받아라, 내가 태어난 날! …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와 고난과 슬픔을 겪으며 내 일생을 수치 속에서 마감해야 하는가?”(예레 20,14.18).


    그는 급기야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 하느님께 실망을 느끼고 하느님을 나쁘게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이 되었습니다.”(예레 15,17)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예레 20,7) 하지만 하느님은 예레미야의 원망에도 화를 내시지 않습니다. 다만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면’(예레 15,19)이라고 따끔한 주의를 주시면서 그를 당신의 대변인으로 만드시고 그에게 여러 가지를 약속해 주십니다.(예레 15,19;20-21)


    하느님은 예레미야가 지금의 고통을 견디고 앞으로의 사명에 걸맞게 성장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네가 사람들과 달리기를 하다가 먼저 지쳤다면 어찌 말들과 겨루겠느냐? 네가 안전한 땅에만 의지한다면 요르단의 울창한 숲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예레 12,5)


    너무나 힘들어 타인과 하느님과 자신 등 누구에 대해서도 고운 말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마음을 토로할 수 있으며 하느님은 그것을 귀여겨들으시고 설령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의 고통을 가볍게 해 주십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어디인지를 내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계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 11,33)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마태 1,23)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요한 14,6)이십니다.


    첫 번째 고백과 두 번째 고백이 예레미야의 기도(11,18-20; 12,1-4; 15,10; 15,15-18)와 하느님의 응답(11,21-23; 12,5-6)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세 번째 네 번째 고백에서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상대방을 저주하기에 이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자세가 우리로 하여금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 그분의 위안을 얻도록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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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_ 신정훈 미카엘 신부(서울대교구 해외선교)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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