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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 대한 판단을 멈추어야 하는 이유 [월간 꿈 CUM] 삶과 영성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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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936회 작성일Date 24-09-20 22:05

    본문



    동료 신부님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중에 한 신부님이 자기 동창 신부가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후 면접시험을 볼 때의 이야기라고 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면접관 신부님이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신학교를 오게 됐나?”

    그러자 그 친구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안양에서 전철 타고 수원역으로 와서 수원역에서 ○○번 버스 타고 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함께 식사를 하던 신부님들이 배꼽을 잡으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또 한 명의 신부님이 자신도 신학교 시절 교수 신부님의 질문에 잘못 대답을 해서 큰 곤욕을 치루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신부님이 학부 신학생이었던 어느 날 교실에서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 신부님의 강의가 어찌나 자장가처럼 들리는지 정신을 놓고 졸고 있었다. 그러자 교수 신부님이 졸고 있는 자신 앞으로 다가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언성을 높이면서) 자네 어젯밤에 도대체 뭐 했나?”

    그랬더니 깜짝 놀라 잠이 깬 신학생은 엉겁결에 눈을 껌뻑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잠잤는데요??”

    이 대답이 어찌나 웃기던지 당시 교실은 그야말로 웃음바다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상황이 웃기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다름 아닌 바로 그 질문을 던진 교수 신부님이었다. 자신은 졸고 있는 학생을 야단치려고 던진 말인데, 얼떨결에 그 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에 오히려 화가 나신 모양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 신학생은 말 그대로 교수 신부님에게 찍혀서 신학교 생활이 고달펐다고 한다.

    두 신부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웃음꽃이 활짝 핀 식사시간이었다. 방에 돌아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 생각해 보니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이야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대부분 이런 실수는 대화의 내용이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잘~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어투나 음색이 비꼬는 듯하거나 잘못이나 실수를 한 상황에서 이 말을 듣게 된다면 오히려 반대의 의미가 된다.

    면접 상황에서 “어떻게 신학교에 왔냐”는 질문은 신학교에 어떤 교통수단을 타고 왔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마음으로 신학교에 왔는지를 묻는 신학교 지원동기에 관한 질문이었다. 또한 수업시간에 졸고 있었던 상황에서 어젯밤 뭐했느냐고 묻는 질문은 밤에 무슨 일을 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졸지 말라는 훈육의 말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신학생들은 면접 상황에서 긴장을 했거나 아니면 졸다가 갑자기 깨는 바람에 그 질문의 배경과 상황을 놓쳐버렸을 것이다. 그 결과 본의 아니게 사오정이 되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 두 신학생의 경우엔 웃으면서 넘어갈 일이지만, 우리는 멀쩡한 상황에서 동문서답을 한다든지, 혹은 상황에 맞지 않은 말을 해서 주변인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체험한다. 이들의 말은 대부분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 말에 대한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알아듣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인간의 말은 그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만 비로소 온전히 이해되는 속성이 있다. 즉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 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배경과 상황의 상호작용 안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의사소통에만 국한되어 발생하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 대한 이해와 판단도 결국 같은 과정을 밟게 된다. 즉, 진정으로 한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이 발생한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마태 7,1)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정언적 명령처럼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타인의 행동 이면의 배경과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그 어떤 우리의 판단도 사실 그 정당성을 보장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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