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45) 자기 자신과의 화해-아버지의 자비로운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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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349회 작성일Date 24-04-11 18:46본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의혹과 불신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완고한 마음과 불신앙을 꾸짖으시며 믿음을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하신 일 역시 믿음의 회복이었다. 병자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 말씀을 건네시며 그들을 일으켜주셨다. 마술과 같은 힘이 아닌, 사랑의 힘으로 그들 안에 믿음을 회복시키신 것이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10,52) 믿음의 회복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적이다.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치유는 내적으로 일어난 기적인 믿음의 회복이 겉으로 드러난 표징일 뿐이다.
믿음의 회복은 하느님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신뢰 회복이다. 예수님께서는 병들고 소외되고 지친 이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시며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일으켜주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용기란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필요한 것이다. 용기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새로운 내일을 열어주고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용기를 주시고 믿음을 회복시키시며,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자신에 대한 신뢰까지도 회복시켜주신다.
우리는 자신을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도 그러했다. 과도하게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자신에게 지우며,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지을 때, 자신을 매몰차게 대하며 추궁하고 손가락질하기 일쑤였다. 그런 필자에게 용기를 주고 신뢰를 회복하도록 도움을 준 분은 프랑스 유학 시절 영성지도 신부님이셨다.
“바오로야, 하느님께서는 네가 죄를 지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똑같이 자비롭게 너를 바라보는 분이시란다. 그러니 너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눈으로, 너도 그렇게 너 자신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자비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나와 화해하는 길이며, 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예수님의 용서와 축복의 말씀으로 여인은 하느님과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이제 죄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자신과의 화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스스로 되뇌면 어떨까. “네가 하느님께 얼마나 소중한 자녀인지 깨달아라. 너는 하느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셨고, 보시니 참 좋다고 하신 존재다. 너는 하느님께서 그토록 원하신 소중한 생명이다. 비록 약해서 악의 꼬임에 쉽게 넘어가고 죄도 짓고 상처도 주고받지만, 그래도 너는 죄보다 더 소중하다. 비록 약해서 병고도 겪지만, 그래도 너는 병보다 더 소중하다. 그러니 고개를 들고 다시 아버지께 돌아가거라. 어떤 죄를 지었어도 그분께 돌아갈 수만 있다면, 용서받고 치유되어 새살과 같은 마음이 돋아날 것이다. 용기를 내어라. 주님께서 팔을 벌려 너를 안아 주시며 일으켜 세워주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너를 바라보는 자비로운 눈으로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너도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며, 자녀로서의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낄 것이다. 더는 아버지께 감추고 숨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그런 너를 받아주시기 때문에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
가톨릭평화신문 202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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