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 없는 대한민국 꿈꾸며…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게 해달라 기도” [타인의 삶](19) 수학 일타강사 정승제 안토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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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516회 작성일Date 24-05-16 09:11본문
수학 일타강사 정승제씨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선생님이 아닌, 생선님으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수학여행비를 몰래 내준 학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이란 호칭은 그런 분들한테만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4년째 인강 최고 조회 수
선행학습 현실에 자주 화 나
수학 향한 호기심이 진짜 공부
EBS서 강의할 때 매우 행복
16년째 주일미사 꼭 참석
힘든 일 겪고 주님과 약속
여행갈 땐 성당 근처 숙소 예약
온라인 백과사전 나무위키에 ‘수포자’를 치면, ‘수학 과목을 포기한 이들을 일컫는 단어''라고 나온다. 그런데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대한민국에는 수포자라는 단어가 2042년 수학강사 정승제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었다’라는 한 문장이 더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사교육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 수포자가 사라지길 바라는 이 사람은 수능 수학 출제위원도,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도 아니다.
2011년부터 14년째 인터넷 강의 최고 조회 수로 ‘일타강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EBS 수능 수학강사 정승제(안토니오, 47)씨다. 지금까지 누적 수강생 수만 910만 명. 선행학습은 도리어 수학을 못 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지론으로 방송과 강의실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입시교육 현장의 한복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 교육 풍토가 전혀 달갑지 않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학원을 가고, 중학교 때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세 바퀴 돌리는 사교육 현실에 자주 화가 난다. 생각하는 재미로 수학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선행학습으로 문제 빨리 푸는 기술, 무조건 답을 내는 게 수학의 목적이라 여기는 교육방식이 결국 수많은 수포자만 양산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 수학을 향한 호기심, 암기가 아닌 탐구를 지향하는 진짜 공부를 강조한다.
“대부분 부모가 아이를 수포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고3 때까지 하는 행동이 수학 성적을 못 올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많은 학생을 가르쳐온 그에게서 우리 수학교육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미사 때 보편지향기도에 ‘선행학습이 사라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넣어야 한다고 자세를 여러 번 바꿔가며 강조했다.
2009년 삶의 위기를 맞은 그는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겠다고 하느님과 약속했다. 하지만 주일 미사에만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가톨릭 신자의 본질적 삶인지를 묻는다면 부끄럽다고 했다. 독실한 신자냐고 물으면, 매우 민망하다고 했다. 그는 수업 시간에 학생이 졸고 있으면, “수강료 환급해줄 테니 햄버거 사 먹으라”고 타이른다. 공부하는 이유를 모른 채 부모에게 칭찬받기 위해 학원에 오는 학생들에게 공부의 본질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4월 26일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집에는 2m 높이 성모상이 세워져 있었다. 방송과 강의실에서 보였던 모습처럼 그는 질문 하나하나에 집중했고, 열정적으로 답했다.
- 어떤 계기로 세례를 받으셨나요.
“제 의지와는 다른, 유아세례입니다. 하하. 어머니가 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첫 영성체를 했고요. 중학교 1학년 때 견진성사를 받았어요. 아주 전형적인 딱 그런 코스죠. 혼인성사는 아직 못했지만.(웃음)”
- 전형적인 유아세례자는 교회를 한 번쯤 떠나죠.
“맞아요. 떠났습니다. 정확하게 떠났다가 정확하게 돌아왔습니다. 고3이 되기 전까지는 주일 미사와 주일학교에 빠지면 큰일 난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한민국 현실에서 고3이 주일 미사에 간다는 게 무리이니, 자비로우신 분이라면 1년 후에 대학을 붙여주시겠지요’하고 그분과 딜(거래)을 했습니다. 그렇게 주일 미사에 안 갔는데 합격이 된 거예요. 성당에 안 가다가 2009년에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요. 너무 극한의 고통이어서 해결을 안 해주셔도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죠. 이제는 죽을 때까지 절대로 안 빠지겠다고요. 너무 힘드니까 그런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그 후로 한 주도 주일 미사에 안 빠지고 있어요. 해외 여행을 갈 때에도 호텔 예약은 성당 가까운 곳에 합니다.”
- 수학 강사로서 이만큼 유명해질 줄 알았나요?
“2007년에 인터넷 강의를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 수학 학원 선생님 수업이 너무 좋았던 영향도 있었어요.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인생의 전환기를 갖는데 그게 저한테 없어요. 나이를 이만큼 먹었는지도 몰랐어요. 갑자기 스타 강사가 된 게 아니라 조금씩 입지가 커졌죠. 수업 준비를 하고 강의하고 문제 푸는 일만 한 거예요. 아직 제 강의는 완성이 안 됐어요. 지금도 교재는 수정 중이고요. 똑같은 문제도 접근 방식은 여러 가지이고, 같은 접근 방식이라도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이 너무 많아요. 설명 방식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거니까요. 그게 너무 행복하죠.”
정승제씨 자택에 세워져 있는 2m 높이의 성모상. 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이종남 신부와의 인연으로 중국에서 주문해서 설치했다.
-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인생의 전환기를 원하시나요.
“저는 언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면, 실내 온도를 상대방에게 맞춰줄 수 있을 때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이 ‘추워!’라고 했을 때 에어컨을 끌 수 있어야 해요. 근데 저는 지금 못 꺼요.(웃음) 웃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점에서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그걸 놓을 때가 있겠죠. 더 성숙해지면.”
- 수포자들을 가르치고 싶은 열정은 이타적인 행동 아닌가요.
“제가 수업 시간에 흥분을 많이 하는 이유는 수학을 잘하기 위해 모두가 잘못된 방향으로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전 국민이 가스라이팅을 당한 거 같아요. 선행학습이 필요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학원을 한 번도 안 다니고 성적이 안 좋은 학생, 학원을 열심히 다녔는데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을 1년간 가르쳐보고 방송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걸 지금 채널A(티처스)랑 뜻이 맞아 해보고 있고요. 수학 공부는 생각하는 재미로 하는 거죠. 그런데 대부분은 제일 빨리 문제 푸는 방법을 똑같이 반복하는 연습을 해요. 이러니 새로운 문제가 나오면 생각을 못 하는 거죠. 부모들이 앞장서서 몰아가니까 답답한 거예요. 대한민국 수학과 교수 중에 제 말이 틀렸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 EBS를 청정구역이라고 하셨는데, 사교육 현장은 그 반대인가요?
“고2 때부터 점심 시간마다 친구들한테 수학 설명해주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EBS 선생님들은 수업을 왜 졸리게 할까’를 그때부터 생각했어요. 학원 강사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은 아니에요. 사교육 업계에서는 커리큘럼을 짤 때 ‘이 강의를 하면 매출이 올라가겠지’라는 느낌이 강해요. 그러니 존경받지 못해도 싸다라는 느낌이 들죠. 학생들이 장사치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고요. 2009년 당시 EBS 곽덕훈 사장님이 ‘사교육 스타 강사 다 데리고 와’라고 해서 특채로 들어갔는데, 다들 그만두고 저만 남았어요. EBS에 강의하러 갈 때는 깨끗한 청정구역에 가는 느낌이에요. 지금껏 갈고 닦은 수업 능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게 너무 행복해요.”
- 수학과 신앙에 공통분모가 있을까요.
“아?. 하느님과 수학은 절대로 오류가 없다. 제가 절대적으로 믿는 두 대상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요만큼의 의심조차 하지 않는. 요만큼의 의심조차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세상에 선악의 기준이라는 것이 다르고, 성직자들도 나라마다 생각이 다르겠죠. 그런 의미에서 과연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분은 매우 흡족해하실까 라는 의문은 항상 있어요. 저는 절대적인 답을 종일 찾는 사람인데, 절대적인 답이 안 나오니까 생각이 많아지는 거 같아요.”
- 신앙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일주일에 한번 한 시간,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해요. 매일 기도하진 못하고, 당신 뜻대로 살 자신은 없지만, 최대한 당신 뜻에 가깝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정씨는 자신을 ‘안토니오’라고 소개해보는 게 처음이라며 “성당에서 만나면 언제든지 자녀의 학업 상담을 해드리겠다. 마음껏 말을 걸어달라”고 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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