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선 교수의 우리 성인을 만나다] 16. 성 김대건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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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455회 작성일Date 24-04-18 12:31본문
성 김대건 신부, 천주의 부르심에 쉬지 않는 응답으로 성소 완성
윤영선 작 ‘성 김대건 안드레아’
출 생 | 1821년 충청남도 당진시 솔뫼
순 교 | 1846년(25세) 새남터 / 군문효수
신 분 | 신부
민족의 첫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다. 성소(聖召)는 말 그대로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이지만, ‘하느님 뜻(계획)’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 계획에 대해 우리가 드리는 응답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 게 성소가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 뜻을 묻고 성실히 살아가는 신자들은 이미 각자의 성소에 충실한 분들이다. 이에 비해 사제·수도자로 초대된 삶의 방식은 하느님 뜻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고 적극적인 화답이다. 자발적으로 천주를 찾아 나선 우리의 신앙 선조와 그들을 불러주신 하느님 성소는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광야 같은 이 땅에서 실낱같은 천주의 음성에도 선조들은 열성적인 신앙으로 응답을 드렸다. 선교사도 없이 교회를 세우고, 자신들의 후예인 김대건 안드레아를 민족의 첫 사제로 봉헌하였다.
사제생활 1년 1개월 만인 25세 때 순교
첫 사제 김대건의 생애는 ‘성소’가 하느님 뜻에 응답해 가는 긴 여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제로 불린 것이 가장 위대한 성소이지만 삶의 순간순간 주어진 부르심과 응답은 순교자가 되어가는 여정처럼 보였다. 그는 충남 당진 솔뫼에서 태어났다. 성소의 시작이었다. 순교자인 증조부와 할아버지의 형제들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에게로 이어진 신앙이 대건에게 상속되었다.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주어진 또 하나의 성소였다.
고국을 떠나온 소년은 죽음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나들어 1845년 8월 17일 중국 김가항성당에서 조선인 첫 사제가 되었고, 이듬해 9월, 사제생활 1년 1개월 만에 2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감옥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들은 재판관과 구경꾼은 “가엾은 젊은이, 어려서부터 엄청난 고생을 많이도 하였구나”라며 혀를 찼더란다.(1846년 8월 26일 자, 김대건 서한) 박해 중인 조선에서 태어나고, 먼 나라의 신학생으로 파견되고, 사제가 되고, 수인이 되고, 순교자가 되도록 끊임없는 천주의 부르심에 쉬지 않는 응답으로 그의 성소가 완성되어 갔다.
“우리의 성소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은이성지를 찾았다. 성인이 세례, 신학생, 서품 이후의 사목활동, 어머니 우르술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린 곳이다. 미사에 참여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매일의 성소에 응답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성당 첫째 줄에 앉아 있는 두 꼬마 형제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여기까지 온 그들도 오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게 아닐까. 한여름 햇볕에 검게 그을린 개구쟁이 얼굴로, 거룩한 미사에 경건함마저 느끼면서 예를 다하는 순수하고 환한 모습에서 어린 김대건 신부님을 보는 듯하였다. 아이들의 미소가 전달되어 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고 새로운 기쁨의 에너지가 샘솟았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이시여~ 한국의 모든 사제 성소와 우리의 성소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가톨릭평화신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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