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사순 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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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446회 작성일Date 24-02-21 20:18본문
제1독서 창세 22,1-2.9ㄱ.10-13.15-18
제2독서 로마 8,31ㄴ-34
복음 마르 9,2-10
수년 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던 순례 중에 갈릴래아 호수 남서쪽, 북부 이스라엘의 이즈르엘 평야 북동쪽 방향에 위치한 타보르(Tabor)산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타보르산은 평지 위에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어서 588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도 쉽게 시야에 들어옵니다. 타보르산은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장소로 알려졌지만, 복음서 저자들은 이 산의 이름을 정확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주교 치릴로는 348년에 타보르산을 예수님의 변모 사건 장소로 인정했습니다. 이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산을 ‘예수님 변모의 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타보르산 위에는 두 개의 기념 성당이 있습니다. 하나는 엘리야성당(그리스 정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 변모 성당입니다. 작은형제회는 1924년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성당을 지었습니다. 주님 변모 성당의 건축양식은 복음서 속 베드로의 말씀에서 영감을 받은 듯합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르 9,5)
기념 성당의 건축 구조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두 명의 인물이 순례객을 맞이합니다. 그중 하나는 모세이고, 다른 하나는 엘리야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상징한다면, 엘리야는 예언자들을 대표합니다. 순례객들은 성당 입구를 중심으로 왼편에서 모세에게 봉헌된 경당을, 오른편에서 엘리야에게 봉헌된 경당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두 인물은 순례객들을 예수님께 인도합니다. 순례객들은 모세 경당과 엘리야 경당을 양옆에 두고 중앙 통로를 따라 걸어갈 때 그리스도 경당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시선을 위로 향하면, 그곳에는 예수님의 변모를 묘사한 화려한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면, 거기에서 예수님과 관련한 주요 사건, 곧 탄생, 성찬례, 수난과 죽음, 부활을 묘사하고 있는 모자이크를 볼 수 있습니다.
주님 변모 성당을 순례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묵상하도록 초대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하신 분이시며(마태 5,17 참조), 사람이 되셨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해 명료한 답변을 주고 계십니다.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로마 8,34)
교회는 사순 제2주일에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를 ‘복음’으로 선포합니다.(마르 9,2-10, 참조: 마태 17,1-9[가해]; 루카 9,28-36[다해]) 마르코복음에서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마르 9,3) ‘변모’(變貌)는 사전적으로 모습이나 모양이 바뀜을 의미합니다. 새하얗게 빛나는 예수님의 옷은 마지막 날,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보여주실 하느님 아들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 속에 감추어진 그분의 신성이 제자들 앞에서 잠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변모 사건에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습, 곧 부활의 시간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없는 생명, 다시 말해서 죽음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전제로 하는 부활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향해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마르 8,30 참조)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면서(마르 8,31 참조) 당신이 걸어가야 하는 길, 곧 십자가를 통해 드러나는 ‘신원’을 알려주셨습니다.
사순 제2주일의 감사송은 ‘십자가와 영광의 결합이 보여주는 신비’라는 오늘 복음의 중심 주제(「강론지침」 65항 참조)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 그 거룩한 산에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시어,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것을 밝혀 주셨나이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이야기가 사순 2주일을 보내는 우리에게 ‘복음’, 곧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예수님의 “영광이 그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과 나누고자 하시는 그 영광이라는 것”(「강론지침」 67항)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어둠 속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아파하고 신음할 수 있지만, 십자가 위에서 수난받으시고 돌아가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셨기에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2코린 3,18 참조)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와 관련한 그의 체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3,21)
어느 영화의 대사 한 마디가 떠오릅니다.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이 그림자 위에 서 있다는 것은 당신이 빛과 아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말씀은 사순 시기를 보내면서 부활축제의 기쁨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우리에게 사순 제2주일의 의미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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