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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3. 연애하는 할머니, 그리고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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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037회 작성일Date 20-08-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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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내가 있는 베르사유수도원은 양로원을 운영한다. 어르신 220여 명이 사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양로원이다.

    어느 날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연세가 아흔에 이른 할머니가 미소를 가득 품고 나를 바라보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고운 모습에 시종 미소가 흐르는 모습이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보였다. 나는 할머니가 웃음을 짓고 계신 이유를 대화 후에야 알게 됐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하는 물음에 어르신은 “남편이 토요일이면 나를 만나러 와요” 하셨다. 그리고 “이튿날인 주일에 할아버지는 파리로 가신다”고 했다.

    나는 궁금증이 용솟음쳐서 할머니께 다시 여쭈었다. “왜 할아버지는 이곳에 함께 계시지 않고 파리로 다시 가세요?” “남편이 화가인데,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파리에 화가가 그렇게 많다고 들었는데, 할머니 남편도 이 예술가 중의 한 분이구나 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때쯤 갑자기 옆에서 대화를 듣던 다른 할머니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연세 많은 잉꼬 노부부의 이야기에 빠져 있는데 글쎄 옆의 어르신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뒤늦게 나는 화가 남편을 둔 이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남편과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얼마나 사랑하고 좋아했을까. 얼마나 서로를 위했으면 매주 토요일마다 죽어서도 자신에게로 오는 남편과의 만남을 미소를 지으며 행복으로 여기고 계실까.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흔의 할머니는 치매 중에도 남편과 아름다운 사랑 속에 고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3년이 조금 넘었다. 연세가 91세셨다. 세상의 모든 자녀가 어머니의 자비로운 모습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듯이 나 역시도 프랑스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믿음 깊으셨던 어머니를 갖게 해주신 하느님께 늘 감사드리며 지낸다. 이 글을 쓰려는 원의가 일어나는 것도 하느님과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에서다. 머리와 마음 안에서는 빠르게 어머니의 추억이 푸른 하늘의 흰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나는 1980년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에 입회했다. 그리고 이후 휴가차 대구에 사시는 어머니 집을 찾았다. 입회 3년 만이었다. 이튿날 아침 여독이 풀리지 않아 조금 늦게 일어났는데, 눈길이 주방에서 딱 멈췄다. 반들반들한 밥상 위에 한 번도 열지 않은 커피 병, 그리고 그 옆에는 빵과 잼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빵 옆에는 어머니가 드실 밥과 국, 반찬이 있었다.

    놀란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네가 프랑스에서 아침 식사를 이렇게 하는 것을 알고, 네가 오기 전에 준비했다.” 어머니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나는 한국에 와서도 프랑스식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그것도 어머니 집에서.

    당시 수녀원에서 처음 3년간의 생활은 불어, 생활 관습, 문화 등을 익히느라 바쁘고 힘들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한국에 왔으니 긴장이 풀어질 수밖에. 그런데 어머니와 재미있게 이야기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힘들어요” 하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머니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시며 딱 한 말씀 하셨다. “주님과 함께하면!”

    정말 이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게 깊고 깊었던 어머니의 신앙은 나에게 그대로 흡수되었다. 나는 오늘도 ‘주님과 함께’ 우리 자매 수녀님들과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가톨릭평화신문 2020-08-05 등록
    가톨릭뉴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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