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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38. 한없이 주는 땅-지구는 하느님의 정원이고 땅은 생명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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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56회 작성일Date 23-10-04 16:57

    본문

    지구는 하느님의 정원이고, 땅은 생명의 근원인 고향과 같다. 그리고 우리는 지구를 가꾸는 정원지기임을 상기해야 한다.  OSV

     

     


    농부는 땅을 끔찍이도 사랑했다. 쉼 없이 일했고 여유가 있을 때는 버들피리를 불기도 하고 잔디밭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기도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도시로 빠지는 길이 생기면서 땅값이 치솟았다. 땅처럼 순수했던 농부는 불평이 늘었고 “농사는 지겨워서 못 짓겠다. 장사를 해야지. 널 팔아서 밑천을 삼겠다”고 했다. 결국, 서 마지기의 땅이 반달만 하게 남았다. 땅은 황폐해졌지만, 땅은 한결같이 농부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찾아온 농부, 전과 같지 않게 배는 불룩했고, 눈빛은 탐욕으로 가득했다. “널 마저 팔아야겠다. 차도 사고 새 장가도 들어야겠어.” 땅은 또 없어졌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하현달만 한 비탈진 언덕뿐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어느 날 영구차에서 관이 내려졌다. 땅은 농부의 시신을 품에 맞아들였다.

    정채봉님의 「생각하는 동화」의 「멀리가는 향기」 중에서 ‘한없이 주는 땅’을 요약해 보았다. 맑고 순수하고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진다.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보물 같은 글을 오랜만에 펼쳐보면서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나는 매일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부어 만든 명동의 빌딩 숲을 가로질러 흙이 없는 땅을 밟고 다닌다. 주변에는 철마다 갈아치우는 재배식 화려한 꽃들이 진열되어 있다. 거리에는 분주하게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손에 각성제인 커피 한 잔씩 들려있다. 깨끗하게 정리된 인위적인 도심의 환경과 말끔하게 차려입고 빠르게 걷는 사람들의 무표정이 어딘가 닮아있는 것 같다. 에리히 프롬의 ‘비생명의 도시에서 비인간화’라는 말이 떠올랐다. 대지의 황폐화를 몰고 온 도시화는 정말 인간다움을 앗아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Human)은 라틴어, ‘HUMUS’가 어원이고, ‘흙’을 뜻한다고 하니, 흙은 우리의 운명이고 고향임이 틀림없겠다.

    우리나라는 10명 중 9명이 도시에서 산다고 한다. 도시 개발의 광풍으로 흙으로부터 멀어진 땅, 흙이 질식되어가는 땅 위에서 우린 매일 살아간다. 흙 없는 대지는 물을 흡수할 수 없다. 비가 오면 갈 곳을 잃고 홍수가 빈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앗아간 땅이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을까?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창세 2,8)

    지구는 하느님의 정원이다. 정원의 흙에서 생명이 움트고 자라고 꽃피면서 열매를 맺는다. 여러 종류의 생물과의 유기적 관계가 깃든 우주다. 흙 한 줌이 지구에서 사는 사람 수보다 더 많은 생물이 있다 하니 신비롭고 경이롭기만 하다. 땅은 어머니와도 참 많이 닮아있다. 우리를 보호하고 키워주는 땅은 어머니다. 생명을 품고 낳고 양육하는 생명의 고향이며 해방의 터다. 오물과 쓰레기로 넘치는 유해 물질마저 품고 분해하여 정화시킨다. 땅은 생명의 근원인 고향이다.

    고향의 물맛과 냄새를 기억하는 연어는 산란 시기가 되면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 고향을 찾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기억이 있다. 야트막한 뒷산만 올라가도 설레고, 어느 집 굴뚝에서 몽글몽글 하얀 연기가 올라오면 구수한 밥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어릴 적 보았던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만 봐도 정겹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성북천만 나가도 어릴 적 물장구치며 놀았던 고향의 개울을 만난 듯 순수한 동심이 되살아난다.

    땅 위의 흙만이 차가운 디지털 세상에서 온기를 찾아주고 인간성을 회복시켜준다. 그렇기에 땅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고 의무다. 반자연과 반생명의 메마른 문명 속에서 점점 토양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소명을 다 끝내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늘의 짝인 땅은 나를 품어줄 것이고 땅의 짝인 하늘은 내 영혼을 품어줄 것이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영성이 묻는 안부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레위 25,23) 언제부터 땅이 누군가의 소유가 되었을까요? 같은 대한민국 땅에서도 강남과 강북의 값의 격차가 너무 크지요. 서울과 지방과의 차이, 지방과 시골과의 차이 또한 어떻고요? 만약 제가 땅이라면 정말 분통이 터질 일이지요. 그보다 더 기막힌 현실은 지구의 살갗인 흙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죠. 흙이 없는 세상은 결국 인류의 문명도 지켜주지 않을 겁니다. 편리함과 경제 가치를 앞세워 지구의 피부를 헤집고 있는 폭력적인 이 현실 앞에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요? 더 이상 ‘효율성’을 따지는 ‘개발’은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기억해요. 지구는 하느님의 정원이고 우리는 ‘정원지기’라는 것을요.
     

     

     


     

    가톨릭평화신문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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