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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갑자기 [월간 꿈 CUM] 꿈CUM 가정 _ 오늘 당신의 자녀와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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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580회 작성일Date 24-05-2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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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침 뉴스에서 한 새내기 공무원의 극단적 선택에 관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요. 저야 일면식도 없는 제 3자의 입장이다 보니 ‘안타깝다’란 표현을 썼습니다만, 가족 입장에서는 오죽할까요? 그 비통함이야말로 단장의 아픔이자, 통한의 사고일 것입니다. 곧 꾸려진 장례식장 빈소의 모습도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애통해 하는 유가족의 모습, 황망한 마음으로 달려올 고인의 지인들. 그 자리에서 한 번쯤은 이런 말도 흘러나오겠지요. 

    “아니, 갑자기 왜?” “며칠 전만 해도 나랑 연락됐었는데, 도대체 왜?”

    도대체와 갑자기라는 말, 특히 이 ‘갑자기’란 말에 온 신경이 가서 꽂힙니다. 과연 갑자기였을까요?

    올해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갔어야 할 친구의 딸은 3월에 개강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휴학계를 냈습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학교 가야할 아이가 세수를 하다 말고 갑자기 펑펑 울더니 ‘오늘이 휴학신청 마감일인데, 도저히 안되겠다. 1년만 재수를 해 보고 싶다’ 했답니다. 지난 학기에 좋은 성적으로 전액 장학금까지 받은 데다 2학년인 올해부터는 부전공도 신청한 상태라 부모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그런데, 조금 물러나 생각해 보니 저만 해도 그 친구로부터 들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대학생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겨울방학 두 달 내내 밤낮을 바꿔 살며, 밤에는 뭘 하는지 꼭 해뜨기 직전에야 잠을 잔다’고 말이죠. 그 아이의 긴긴 겨울밤이 어땠을지, 하루아침에 세면대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을 때 그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잠시 헤아려보게 됩니다. 성적 따라 가게 된 대학과 전공학과, 아이는 1년 내내 학교를 다니면서도 마음 한 자락이 못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휴학신청 마감일이 되자 쫓기는 마음과 자기 선택에 대한 불안, 여기에 부모에게 줄 경제적 부담으로 미안한 마음까지 뒤섞여 눈물로 표현된 것이겠지요.

    유난히 사춘기 앓이를 심하게 하던 제 딸은 또 어땠는지 아세요? 3년 전,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입니다. 갑자기 손목 안쪽에 ‘化樣年華’(화양연화)란 글자를 타투로 새겨 왔었습니다. 지워지지도 않는 문신을 말이죠. 저는 그 문신을 본 순간 눈앞이 까마득해지면서 쓰러질 듯 아찔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 문신이라니, 조폭도 아니고 이제 겨우 열 다섯인 여자 아이 손목에 문신이라니! 갑자기 왜? 도대체 겁도 없이 저걸 어떻게? 게다가 학교는 어떻게 가? 선생님이 보면? 동네 사람들이라도 보면?’  그런데, 그걸 저한테 들킨 아이는 오히려 더 당당하게 자랑삼아 뜻풀이를 해주며 제게 말하는 겁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란 뜻’이라고 말이죠.

    아무리 미쳐 날뛴다는 사춘기, 중2병이라지만 그 갑작스러운 상황과 아이의 돌발행동이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정신적 충격이 좀 가라앉자 속으로 생각했지요. ‘그래. 네 손목에 한 번씩 올라오던 그 분홍줄(비자살성 자해의 흔적) 대신 삶에 대한 행복한 느낌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당시 아이는 교우 문제로 다니던 학원도 다 끊고, 날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괴로워하곤 했으니까요.

    아이의 사춘기 앓이는 그 후 3년도 넘게 격렬히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눈에 띄게 조금씩 가라앉고 있지요. 그런데 아이에 대한 긴장도가 다소 느슨해지자 이번엔 그 후폭풍이 제게로 찾아온 것 같더군요. 속이 허하고 한없는 무력감. 뚜렷한 이유도 없이 불쑥 눈물이 올라오고, 감정 제어가 안 되는 것이 아이 사춘기 끝에 찾아온 갱년기 시작인가? 싶기도 했지요. 그렇게 우울한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은 정말 이러다 내가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남편한테 말했답니다. “내 얘기 좀 들어주면 안 돼?” “아, 나 TV 좀 보며 쉬고 싶은데….” 그리고는 내 눈치가 평소와 영 다른 느낌이었는지 TV 리모컨을 내려놓으며 말하는 겁니다. “그래, 말해 봐. 그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내가 요즘 이상해, 이유는 모르겠고. 애 때문에 너무 오래 긴장하고 속 끓이고 힘들어서 그게 쌓여서 그런지, 아무튼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 최소한 당신은 알고 있어야지. 내가 요즘 이렇다는 걸.”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는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마치 소화되지 않은 채 내 안에 쌓였던 것들이 한꺼번에 서러운 눈물로 쏟아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말을 하고 나서인지 그 후로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지요. 그냥 밖으로 말만 했을 뿐인데, 말이라도 하는 게 이토록 큰 차이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남편한테 먼저 들어달라고 해서 속의 응어리를 풀어냈지만, 앞서 언급한 새내기 공무원은 어쩌면 그것조차 제대로 못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보통 ‘어느 날 갑자기’라고 표현하지만, 이 말 앞에는 반드시 ‘그러던’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였던 것이지요. 분명 새내기 공무원도, 휴학하고 재수를 결심한 친구의 딸도, 손목에 ‘화양연화’를 새길 수 밖에 없었던 저의 딸도 저처럼 모두 ‘그러던’ 나날이 있었던 것이지요. 다만 그게 나의 일이 아니면, 우리의 무딘 마음이 그 신호를 알아채지도, 들어주지도 못한 것일 뿐.

    오늘 우리 아이가 어떤지, 그 마음의 안녕을 한번 물어봐 주시면 어떨까요? 

    설령 괜찮다고 단답으로 흘리더라도 내일 또 한 번 물어봐 주세요. ‘요즘 어떠냐’고. 부모님도 우리의 아이들도 오늘 하루가 안녕할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글 _ 최진희 (안나)
    국문학을 전공하고 방송 구성작가로 10여 년을 일했다. 어느 날 엄마가 되었고 아이와 함께 가는 길을 찾아 나서다 책놀이 선생님, 독서지도 선생님이 되었다. 동화구연을 배웠고, 2011년 색동회 대한민국 어머니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휴(休)그림책센터 대표이며,  「하루 10분 그림책 질문의 기적」을 썼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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