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3주일 - 기쁨이 없는 신자는 불량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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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02회 작성일Date 24-12-17 22:0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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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 알로리 작 ‘요한 세례자의 설교’, 1601~1603년.
대림 제3주일은 기쁨의 주일 혹은 장미 주일이라 부릅니다. 주님께서 오심을 벅찬 희망으로 기다리며, 미사 중에 사제는 장미색(분홍색) 제의를 입고, 세 번째 장미색 대림초를 켜고, 전례에서는 온통 ‘기뻐하라’고 초대합니다.
그리고 이 희망의 기쁨을 가난하고 병든 이들, 소외된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자선을 실천하는 주일로 지냅니다. 자선은 기쁨을 나누는 일이고, 나누기에 더 기뻐지는 일입니다.
복음에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면서, 그분께서 오시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표시’로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죄를 용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세례는 하느님께서 새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모든 죄의 용서와 하느님 자녀로서 새 생명을 시작하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 세례를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 모두는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에서 요한 세례자를 찾아온 군중과 세리들과 군사들은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동일하게 묻습니다. 요한 세례자의 대답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일반적이고 구체적입니다. 율법적이지도 권위적이지도 않습니다. 군중에게는 자선과 나눔을, 세리에게는 공정을, 군사들에게는 평화를 요구합니다. 이는 삶의 모습을 바꾸어 회개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라는 뜻이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럴 때 드러나게 되는 표지가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어야 합니다.
언제부턴가 저는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잘 웃지 못하고 심각해졌습니다. 사제생활의 책임감을 무거운 짐처럼 여기며 생활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도 편안해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신앙을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먼저인데, 율법학자처럼 스스로를 재단하고 남들을 판단하며 지내왔습니다. 저 스스로 잘 살고 있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회개의 표지를 실천하는 신앙이 아니고, 하느님을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기쁘지 않은 신앙인은 불량품입니다. 어쩌면 저는 불량품 사제인가 봅니다.
억지로라도 웃는 얼굴은 스스로의 뇌도 착각하여, 좋은 호르몬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상책이지만, 웃어서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최상책입니다.
하느님 안에 행복한 상상을 하며, 입이 웃도록 하고, 눈이 웃도록 하고, 얼굴이 행복한 웃음으로 환해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늘 대림 제3주일 기쁨의 주일을 지내며 다짐해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요한 세례자에게 했던 질문을 곰곰이 묵상해봅시다.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우 여러분들은 성탄을 앞두고, 이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으십니까? 잘 모르시겠으면 일단 먼저 기뻐합시다. 답은 나중에 찾아지더라도, 기쁨을 실천하다 보면 정말 하느님 뜻과 참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이제 곧 그 기쁨을 주시려고 아기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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